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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예술산책

즉비(卽非)의 논리를 통해 바라본 기타노 타케시의 <하나-비>

 

즉비(卽非)의 논리를 통해 바라본 기타노 타케시의 <하나-비>


  서구에 선(禪)을 전한 사람으로 알려진 - 일본의 선사이자 철학자인 - 스즈끼 다이세츠(鈴木大拙, 1870-1966)의 ‘즉비(卽非)의 논리’는 『금강경』을 바탕으로 한 선(禪)의 논리이다.

  『금강경』의 다음과 같은 구절들, 즉 "반야바라밀(般若波羅蜜)은 곧(卽) 반야바라밀(般若波羅蜜)이 아니다(非). 그러므로 반야바라밀(般若波羅蜜)이라고 이름한다.", “중생이라고 하는 것은 곧(卽) 중생이 아니다(非). 그러므로 중생이라고 이름한다." 는 불교의 핵심이 되는 "즉비(卽非)"의 논리를 가장 잘 표현해 주고 있다.

  산은 산이 아님(非)으로서만 산일 수 있고(卽), 물은 물이 아님(非)으로서만 물일 수 있듯이(卽), 일체 사물의 대 긍정(卽)의 세계인 선(禪)은 부정과 차별로서의 "비(非) 즉 부정"을 전적으로 포함하는 가운데 이루어진다.

  긍정을 뜻하는 "즉(卽)"과 부정을 뜻하는 "비(非)"는 단순한 대립의 차원이 아니라, 대립하기에(非) 도리어 대립하는 그대로 동일하다고(卽) 말할 수 있으며, 이러한 사고방식이 곧 불교철학의 정수를 보여준다는 것이 스즈키의 지론이기도 하다. 스즈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마음 그대로 부처이다'(卽心是佛), '마음 그대로 곧 부처'(卽心卽佛)라는 것은 '마음도 아니고 부처도 아니다'(非心非佛)라는 것과 반드시 동일하다는 것이다. 표면적으로 보면, 즉(卽)은 긍정을 비(非)는 부정을 나타내므로 양자 간에 어떠한 관련성도 없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불교의 논리상 그 특징은 '긍정 즉 부정', '부정 즉 긍정'이 되는 것이다. 내가 주장하는 ‘즉비(卽非)의 논리’인 것이다.”

  그래서 "색즉시공(色卽是空), 공즉시색(空卽是色)"에 언급된 『반야심경』의 '즉(卽)'이야말로 색(色)과 공(空)이라는 대립의 세계(非)가 그대로 동일성의 세계임을 말해주는 불교의 핵심 어구라고 할 수 있다.[각주:1]

즉비(卽非)의 논리로 <하나-비> 따라잡기


  기타노 타케시의 일곱 번째 작품이자 1997년 베를린국제영화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하나-비>는 이러한 “즉비(卽非)의 논리”를 잘 보여주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먼저 영화제목을 살펴보면 “하나(花)”는 삶과 사랑을, “비(火)”는 죽음과 폭력을 상징하고 있다. 그런데 “하나(花)”와 “비(火)”를 이어주고 있는 “-”이 바로 삶과 죽음이 둘이 아님을 나타내고 있는 즉비(卽非)의 기호인 것이다. 기타노 타케시는 죽음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폭력이 주가 아니라 죽음이 가장 큰 테마다. 죽음에 가장 가까운 것이 폭력이고, 거기에 가장 가까운 것이 또 야쿠자와 형사다. 추를 움직이면 한쪽으로 강하게 움직일수록 다른 쪽에서도 더 강하게 움직인다. 마찬가지다. 죽음에 대해 깊게 생각하는 사람이 더욱더 열렬하게 삶을 살아가는 법이다.”(기타노 타케시, 시네 21 인터뷰 / 1998.12)

  이러한 타케시의 말은 곧 ‘삶’이 참으로 ‘삶’인(卽) 것은 ‘삶’이 ‘삶’이 아니기(非) 때문이라는 것, 즉 “죽음”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영화 속에서 타케시는 주인공 니시가 아내를 면회하러 갈 때, 그리고 자신이 다쳐 병원에 갔을 때 병원 안 복도에 걸려 있는 천사의 그림을 클로즈업 한다. 병원에 이 세상의 존재가 아닌 천사의 그림이 있다는 것은 곧 삶과 죽음이 즉비(卽非)하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장면이다.

  이러한 영화 속, 즉비(卽非)의 논리를 언급하는 미장센의 배치는 호리베가 그린 불꽃놀이 그림에도 여지없이 나타난다. 니시가 아내와 함께 여행을 떠나 불꽃을 바라보고 폭죽놀이를 하고 있을 때 바로 이어지는 장면은 호리베가 그린 불꽃놀이 그림이다.

  이때 불꽃놀이 그림은 같은 도화지에 불꽃놀이 후 소멸된 불꽃과 함께 이어져서 등장한다.
  더불어 이 그림이 재등장할 때에는 좌우가 바뀌어 나타난다. 곧 생성과 소멸의 즉비(卽非)를 언급하고 있는 장면인 것이다. 

  이렇게 “삶”과 “죽음”을 즉비(卽非)의 논리로 보았기에 “삶”에 대한 애정은 영화의 시작에서부터 나타난다. 영화의 시작과 함께 땅에 쓰여진 “죽어라”는 말이 클로즈업되고 이어서 차가 해변도로를 질주하는 장면으로 오버랩된다. 이 장면은 타케시가 이전 영화들과는 달리 삶에 대한 긍정을 표현해 내고 있는 장면이기도 하다. 이러한 타케시의 시선은 곳곳에서 발견된다.
  예를 들면 사고 후 호리베의 휠체어에 묶여 있는 행운의 부적이라든지, 니시의 아내가 죽은 꽃에 물을 주는 장면이라든지, 날개가 꺾인 연을 끝까지 날리려는 소녀의 모습에서 말이다. 

 하지만 니시의 절친한 동료인 호리베가 자살을 시도한 후, 해변도로를 질주하던 차는 다시 반대 방향으로 되돌아온다. 이는 주인공 니시에게 있어 저항할 수 없는 운명이기도 하다.(아내의 백혈병, 반신불구가 된 친구, 죽은 후배)

  영화의 후반부인 아내와의 여행 속에서도 니시 부부를 계속 뒤따라오는 야쿠자들은 끊을 수 없는 니시의 업(業)의 상징이다. 

  결국 니시 부부의 죽음으로 이 모든 운명적 폭력이 끝을 맺지만 타케시는 이들 부부의 여정을 어둡지도, 암울하지도 않게 그려낸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니시 부부의 여행 속에 나타나는 소소한 에피소드들은 보는 이들의 가슴을 더욱 애절하게 만들뿐만 아니라 영화의 분위기가 무겁게 흘러가는 것을 방지하는 역할을 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타케시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한쪽 날개가 부러진 천사의 그림으로 끝을 맺는다. 이는 힘껏 날아오르려고 했지만 니시를 둘러싼 운명의 폭력 앞에 날개 꺾인 천사처럼 죽음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던 니시의 삶에 대한 마지막 애도이기도 하다.


<하나-비> 속 그림 따라잡기


  카메라감독이 야마모토 히데오(Hideo Yamamoto)로 바뀌면서 예전과 달리 팬과 크레인 이동이 빈번히 사용된다. 영화는 크게 니시의 회상(플래쉬백 사용)과 함께 전개되는 전반부와 니시 부부의 여행으로 이루어진 후반부로 나뉜다. 반면 인물을 중심으로 놓고 볼 때, <하나-비>는 평행편집을 통해 주인공 니시와 그의 절친한 친구이자 동료인 호리베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물론 이들은 <3-4×10月>(1990)부터 <키즈 리턴>(1996)에 이르기까지 등장한 이인조의 성장한 모습이기도 하다. <하나-비>에서 이들은 오랜 친구이자 명콤비 형사이고 아내들까지 친구라는 설정으로 묶여 있다.

  그러나 영화 초반부에서 호리베는 가족과 강한 유대 관계 속에 있는 반면, 니시의 자녀는 어린 나이에 죽고 니시의 아내는 백혈병에 걸려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는 것으로 그려지고 있다. 이어 호리베가 근무 도중 불구가 되고 가족에게 버림받게 될 때, 니시는 아내의 세계로 들어가 가족 관계의 일부나마 회복하게 된다. 사고 후 자살을 시도하였던 호리베는 살아남아 그림을 통해 희망을 보는 반면, 니시는 아내와 함께 죽음을 맞이하는 것으로 영화는 끝을 맺는다. 니시와 호리베, 이들은 각각 꽃과 불의 이미지처럼 상반된 환경에 놓여 있으면서도 뫼비우스의 띠처럼 꼬여 있다.

  특히 사고 이후, 자살 시도의 실패와 함께 호리베는 말문을 닫게 되는데 이 시점에서부터 호리베가 그린 그림이 등장한다. 물론 이 그림들은 모두 다케시가 직접 그린 그림들이기도 하다. 이러한 그림들은 영화의 후반부에 나타나는 니시의 이야기에 적극적으로 관여하게 되는데 그 과정은 아래와 같이 세 단계로 나눠진다.

① 초기 그림들은 동물이나 사람이 꽃과 접합된 형태였지만 호리베의 재활을 위한 활동성과로 화면에 삽입된다.

② 니시 부부가 불꽃놀이를 구경할 때 뒤이어 호리베의 불꽃놀이 그림이 등장한다.
    이를 계기로 그림은 영화 내부의 현실과 중첩된다.

③ 이후 그림에 글자가 나오면서 호리베의 그림은 니시의 삶을 예언하게 된다.


<하나-비>의 영화적 특징 따라잡기

 
   ① 소위 ‘오락영화’에서 정석으로 답습되어온 틀이 무시된다.
  타케시의 첫 영화인 <그 남자 흉폭하다>(1989)의 마지막 씬에서 주인공 아즈마 형사는 숙명적인 악순환을 끊기 위해 마약에 찌든 여동생까지 죽이면서 자신도 죽음으로 끝을 맺는다. 이는 곧 승리와 남자다움의 확인이라는 표상의 결여를 뜻한다. 만약 그 주인공이 클린트 이스투우였다면 어땠을까? 아마도 만신창이가 된 모습으로 여동생을 껴안고 그 소굴에서 나오지 않았을까? 장엄한 음악과 함께 말이다. 서핑을 소재로 사용한 <그 여름 가장 조용한 바다>(1991)에서도 서핑이 다이나믹한 스포츠임을 느끼게 하는 묘사는 전무하다. 마찬가지로 <하나-비>에서는 은행강도 씬이 등장하지만 이 씬에서도 ‘오락영화’의 문법은 철저히 무시된다. 범행을 저지르는 니시의 행동이 한 은행원에게 발각되고 니시 뒤에 앉아 있던 사람에게도 목격되지만 니시는 아무런 어려움 없이 자신의 목적을 완수하고 조용히 사라진다. 특히 그 은행원과는 눈까지 서로 마주쳤지만 그냥 물끄러미 쳐다보는 것으로 끝이 난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은 CCTV를 통해 관객들에게 전달된다.

  ② 과감한 생략과 압축으로 인해 내러티브의 효율성이 무시된다.
  영화의 첫 장면인 야외주차장에서의 폭력 씬은 왜 니시가 그러한 행동을 하게 되었는지 그 원인에 대해 설명하지 않는다. 나중 니시가 술집에서 야쿠자와 싸움을 한 직후, 주차장에서 그들과의 격투 씬이 나옴으로써 이 두 씬이 연결되어 있음을 관객은 알아차릴 수 있다. 하지만 타케시는 전후 맥락에 대해서 친절한 언급을 외면한다. 영화의 전개상 이 두 씬은 생략되어도 영화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③ 이야기에 괜한 감상을 섞거나 장황한 설명을 덧붙이지 않는다.
  불구가 된 호리베가 니시와 함께 대화를 나누는 씬에서, 호리베는 사고 후 자신의 가족에게 버림당하였음을 이야기한다. 참 슬픈 장면일 수도 있지만 관객은 호리베에게 감정이입을 할 여지가 없다. 타케시는 언제나 관객들이 어떠한 등장인물에게도 감정이입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더불어 니시가 경찰을 그만 두게 된 사실이 - 니시에게 이자를 독촉하러 온 - 야쿠자의 입을 통해 언급되지만 왜 그만두게 되었는지 그 원인은 설명되지 않는다. 중요한 사실은 “지금” 니시가 경찰이 아니라는 것이다.

  ④ 주인공은 무표정하고 과묵하며, 때로는 아무 이유 없이 정면을 물끄러미 바라봄으로써 관객의 심리적 감정이입을 차단한다.

  특히 주인공의 과묵함은 그의 영화 <그 여름 가장 조용한 바다>(1991)의 주인공이 청각장애인으로 설정되면서 더욱 도드라진다.

  ⑤ 관객의 허를 찌르는 소소한 에피소드들이 산재되어 있다.
  <3-4×10月>(1990)에서 주인공 마사키가 마지막 회 굿바이 홈런을 치지만 앞서가는 같은 편 주자를 추월해 홈으로 들어옴으로써 시합을 패배로 이끄는 장면이나 <하나-비>에서 범인의 집 주위를 탐문하러 왔을 때 니시에게 굴러온 야구공을 야구 놀이하고 있던 두 청년에게 던지는 장면 또한 마찬가지다.

 ⑥ 폭력은 매우 사실적으로 표현되지만 대부분의 폭력 씬에서 폭력을 가하는 장면들이 스크린에 직접 등장하는 경우는 드물다. 그리고 그 자리는 다른 평범한 장면들로 대치된다.
  한 예로 술집에서 두 명의 야쿠자들과 니시의 폭력 씬을 보자. 갑자기 니시가 젓가락을 들고 시선 반대편에 있는 야쿠자의 눈을 찌른다. 하지만 이 장면은 땅에 떨어진 피 묻은 젓가락 장면으로 대치되고 그 다음 연결되는 컷은 눈이 찔린 야쿠자의 모습이다. 직접적으로 눈을 찌르는 장면이 생략된 것이다.

  더불어 타케시에게 있어 총격, 주먹질 같은 폭력은 평온한 일상에서, 아니면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정적 속에서 갑자기 일어난다. 그의 책 『기타노 타케시의 생각노트』에서의 다음과 같은 말은 타케시가 왜 폭력의 리얼리티에 집착하는지 느껴지는 대목이다.

 “내가 어릴 때 살던 동네는 몹시 질이 나쁜 곳이어서 야쿠자들의 싸움을 밥 먹듯이 구경할 수 있었다. 배를 찔린 남자가 “악!” 하면서 웅크리는가 싶더니 그대로 죽어버리는 장면도 보았다. 그런 걸 보고 자랐으니, 영화의 폭력 씬은 모두 거짓말처럼 보였다.  진짜 싸움은 권투시합과는 전혀 다르다. 대부분은 한 방 때리는 것으로 끝난다. 총을 쏠 때도 괜한 멋을 부리지 않는다. 주머니에서 꺼내 쏘고 끝이다. 내 영화에서는 그렇게 표현하기 때문에 사실적으로 느껴질 것이다.” 

  ⑦ 타케시 영화에 나타나는 전체적인 색채, 일명 “기타노 블루”다.

  전체적으로 정리하자면, <하나-비>라는 제목에서도 언급되듯 기타노 타케시는 삶과 죽음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그만의 독특한 영상세계에 담아 담백하게 표현해 내고 있다. 뿐만 아니라 과감한 생략과 압축, 절제미 등으로 인해 "편집의 마술"이라 할만한 독특한 리듬감을 연출하고 있는 타케시는 "기타노 블루"라고 불리는 그만의 색채와 사실적인 폭력성의 묘사, 요소요소에 배치되어 있는 미장센들과 히사이시 조의 음악의 조합을 통해 <하나비>에서 한층 더 성숙한 그의 영화세계를 표현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동양적 삶과 죽음, 그리고 깨달음의 경계선>이라는 주제로 2011년 8월 11일, "영화공간 보기드문"에서 강의한 내용입니다. 

  1. 대승불교의 논리는 반야(般若)를 지향하는 '번뇌즉보리(煩惱卽菩提), 생사즉열반(生死卽涅槃), 일즉다(一卽多)요 다즉일(多卽一)'이다. 이러한 즉비(卽非)의 묘리(妙理)는 바로 대승불교의 꽃이라 할 수 있는 보살정신을 낳고 자타불이(自他不二)의 입장에서 보살도가 행해지는 것이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