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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세계스케치

국정원 대선 불법 개입 사건의 느와르적 결말

국정원 대선 불법 개입 사건의 느와르적 결말

  18대 대통령 선거를 8일 앞둔 2012년 12월11일, 국가정보원 심리정보국 소속 여직원 여론조작 의혹 사건이 발생했다. 민주통합당(이하 민주당)으로부터 부정선거 개입 사실에 대한 의혹을 제보 받은 경찰과 선관위가 민주당원들과 함께 국정원 여직원의 거주지인 서울 역삼동 소재 오피스텔을 급습하였지만 여직원은 자신의 오피스텔 문을 잠근 채 40여 시간 동안 대치 상태를 벌이게 된다.

  이튿날 민주당은 국정원 여직원을 공직선거법 위반 협의 등으로 수서경찰서에 고소했지만 새누리당은 “민주당이 죄 없는 20대 여성의 인권을 짓밟고 있다”고 소리를 높였고 조중동을 중심으로 한 보수언론들은 국정원 여직원 "불법감금"에 초점을 맞추어 기사를 쏟아낸다.

  12월13일 국정원 여직원은 자신의 데스크톱과 노트북을 경찰에 제출했고, 서울지방경찰청 사이버수사대는 제출된 컴퓨터에서 30개 이상의 아이디를 사용하여 <오늘의 유머> 등에서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 "문재인이 다음 대선에서 대통령이 될 수 없는 이유" 등의 정치 관련 게시물을 작성한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수사대는 이같은 사실을 100여 페이지로 정리하여 김용판 당시 서울경찰청장에게 보고했지만 서울경찰청장은 이러한 사실을 은폐할 것을 지시한다.

  곧바로 국정원 여직원의 여론조작 의혹 사건은 대선의 주요 쟁점이 된다. 12월16일, 선거를 3일 앞두고 벌어진 제3차 TV 토론회에서는 이정희 후보의 사퇴로 박근혜, 문재인 양자 후보토론이 벌어졌다. 이때 박근혜 후보는 대선과 관련하여 국정원 여직원이 댓글을 달았다는 증거가 나왔냐고 반문하면서 오히려 보수언론을 통해 왜곡·확대·재생산된 국정원 여직원의 "인권침해" 문제를 제기하였다. 그런데 3차 TV 토론회가 끝난 직후인 밤 11시, 이례적으로 경찰은 보도자료를 통해 국정원 여직원 댓글 사건과 관련하여 댓글 흔적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허위사실을 중간수사결과로 발표한다.

  대선을 이틀 앞둔 12월17일 아침, 보수언론들은 경찰의 조작된 중간수사결과 발표를 토대로 '국정원 여직원 감금', '댓글 의혹 무협의'라는 기사를 대대적으로 보도했고, 박근혜 후보측 또한 선거유세에서 이러한 "거짓사실"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상대 후보측이 근거도 없는 흑색선전을 폈다며 대대적인 역공에 나섰다. 그 결과 12월19일에 치뤄진 대선에서는 51.6%(15,773,128표)를 얻은 박근혜 후보가 48.0%(14,692,632표)를 얻은 문재인 후보를 3.6%(1,080,496표) 차이로 승리하게 된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 당선 이후, 국정원 여직원 댓글 사건의 본말이 하나 둘씩 드러나기 시작했다. 2013년 1월 3일, 수서경찰서는 대선 관련 게시물에 국정원 여직원이 찬반을 표시한 정황이 잡혔다고 발표하게 된다. 당연히 국정원 여직원 자신은 개인적인 의사를 표시한 것이라고 주장하였고, 국정원 대변인 또한 개인의 견해에 따른 소극적 의사표시가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의무를 위반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언급하였다. 

경향신문 2013. 6.15

  그러나 1월31일, 한겨례가 <오늘의 유머> 홈페이지에 사용된 국정원 여직원의 아이디들을 입수해 분석한 결과, 2012년 8월부터 12월까지 11개의 아이디를 바꿔가며 업무 시간에 91건의 게시글을 작성하였고 224회에 걸쳐 찬반 표시를 한 사실이 밝혀졌다. 게다가 국정원 여직원이 작성한 글들은 이명박 대통령 및 MB 정부 칭송, 새누리당 편들기, 야당 및 야당 대통령 후보를 비판하는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경찰은 국정원 여직원이 아이디 11개를 이용해 120건의 글을 게시하였지만 대선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고 판단되어 공개하지 않았다는 궁색한 변명을 내놓는다. 국정원 또한 “정상적인 대북 심리전 활동”이라고 일축한다.

  이에 정청래 민주당 의원이 '<오늘의 유머>에서 어떤 대북 심리전이 필요했고 무슨 대북 첩보와 정보가 있었는지 밝혀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댓글을 단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경찰의 중간수사결과 발표 또한 또 하나의 명백한 선거개입이 분명하다'며, '누구의 지시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의문'이라고 일침을 놓는다. 민주당도 2월 1일 기자회견을 통해 국정조사 등의 강력한 조치를 통해 이번 사건에 대한 책임규명을 분명하게 할 것이라고 천명한다. 이어 2월 6일 민주당은 사건 수사결과 축소 및 왜곡 의혹과 관련하여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을 직권남용, 경찰공무원법 위반 등의 협의로 고발하게 된다.

  결국 국정원 여직원 댓글 사건은 대선 이후 국정원의 조직적 불법선거 개입 사건으로 확대되었고 급기야 3월17일 새누리당과 민주당은 국정조사 실시를 합의하게 된다. 이어 3월18일에는 민주당 진선미 의원에 의해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 취임 직후인 2009년 2월부터 2013년 1월까지 - 국정원 인트라넷에 게시된 ‘원장님 지시·강조 말씀’이라는 내부문건이 공개되어, 원 전 국정원장은 시민사회단체에 의해 국정원법 및 공직선거법 위반 등의 협의로 검찰에 고발된다. 그러나 경찰은 4월18일 최종수사결과 발표에서 '일부 국정원 직원이 댓글 등을 통해 정치에 관여는 했지만 대통령 선거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며 국가정보원법 위반(정치 관여) 협의만을 적용하여 이 사건을 검찰에 송치한다.

  국정원 ‘윗선’으로까지 뻗어나가지 못한 경찰의 최종수사결과 발표는 결국 ‘부실수사’, ‘눈치보기 수사’, ‘겉핥기식 수사’ 등의 혹평으로 이어졌고, '서울경찰청에서 국정원 여직원 댓글 수사에 부당개입이 있었다'는 권은희 수사과장의 양심선언(4월19일)이 이어지면서 그 파장은 일파만파로 퍼져나가게 된다.   

  부실수사 논란을 의식한 듯 검찰은 수사 착수부터 특별수사팀을 꾸린다. 경찰이 소환 하지 못했던 원세훈 전 국정원장을 소환조사하는가 하면 실효성 논란이 있지만 사상 두 번째로 국정원 압수수색도 단행한다. 이를 통해 검찰은 국정원 댓글 작업의 다양한 흔적들을 찾아냈을 뿐만 아니라 경찰 상층부가 수서경찰서 수사팀에 외압을 행사한 정황도 밝혀낸다.

  이런 와중에 민주당 진선미 의원은 ‘박원순 서울시장의 정치적 영향력 차단’이라는 내용의 이른바 ‘박원순 제압 문건’을 공개하며 국정원 정치개입 의혹을 추가로 제기했고(5월15일) 4일 후인 5월19일에는 ‘좌파의 등록금인하 주장 허구성 전파’라는 내용의 이른바 ‘반값 등록금 차단 문건’을 추가 공개하게 된다.

  6월14일, 검찰은 국정원 대선 개입 의혹 사건 수사를 발표하면서 ‘불구속 기소, 선거법·국정원법 위반 동시 적용’이라는 카드를 꺼내 들었다. 법무장관의 “입김”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검찰이 그 책임자인 원세훈 전 국정원장과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의 구속영장 청구는 포기하였지만 국가 최고 정보기관인 국정원을 조직적으로 동원해 대선에 불법적으로 개입했다는 사실과 이 같은 사실을 수사하던 경찰이 대선 직전 허위사실을 발표함으로써 수사결과를 왜곡·축소하도록 지시했다는 사실을 인정한 것이다.

서울신문 2013. 6.15

   이에 대해 보수언론들은 국정원의 잘못 자체를 옹호하지는 않지만 몇몇 인터넷 사이트에 댓글을 올리는 방식으로 대선 결과가 바뀔 수 있는지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하지만 6월14일에 있었던 검찰의 수사결과발표 내용을 보면, 검찰은 수사과정에서 국정원 직원이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아이디를 네이트판 사이트에서 457개, 다음아고라에서 1,291개를 발견하였고 이들 아이디를 이용해 작성된 원글은 이미 삭제된 채 찬반 클릭만 남아있는 것을 확인했다고 한다. 결국 검찰은 국정원이 조직적으로 글을 올리고 서로 찬반클릭 활동을 하다가 증거를 인멸한 흔적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그렇기에 보수언론들의 입장은 궁색할 수밖에 없다. 

  더불어 2011년 4.27 강원도지사 재보선선거를 상기해 볼 필요가 있다. 당시 선거 초반에만 해도 “대통령급” 인지도를 지닌 한나라당 엄기영 후보가 상대적으로 인지도에서 밀리는 민주당 최문순 후보에게 약 20% 가량 여론조사에서 앞서고 있었다. 그러나 선거 막판에 불거진 엄기영 후보 측의 “팬션불법선거운동”이 발각되면서 결국 민주당 최문순 후보가 한나라당 엄기영 후보에 맞서 당초의 예상을 깨고 4.52% 차로 당선되었다.

  한치 앞을 예측하기 어려운 박근혜, 문재인 두 후보의 대선경쟁 속에서 선거를 3일 앞둔 시점에서 나온 경찰의 중간수사발표가 왜곡·조작된 허위사실이 아니었다면 과연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

  분명한 것은 국정원 대선 불법 개입 사건과 12월16일에 있었던 경찰의 허위수사발표가 18대 대통령 선거의 합법성과 정당성에 심각한 훼손을 가져왔고 사실상 박근혜 후보의 손을 들어준 것임은 부인할 수 없다. 

  그래서 표창원 전 경찰대 교수는 '국정원의 오랜 기간에 걸친 불법적 여론조작과 12.16 경찰의 허위 수사결과 발표가 없었다면 박근혜는 대통령이 될 수 없었다'고 지적하면서 '이는 명백히 국정원과 경찰을 이용한 쿠데타이자 권력찬탈'이라고 언급하였다. 나아가 표 교수는 '박근혜 대통령도 닉슨처럼 사퇴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박근혜 대통령의 자진사퇴는 물론이거니와 국정원 사건에 대한 특별한 입장을 밝힐 가능성도 희박해 보인다. 민주당 또한 국정원의 조직적인 불법 선거 개입이 박근혜 대통령의 당선무효로 이어지는 것에 대해서는 신중한 입장이다. 이제 국정원 대선 불법 개입 사건은 법원에서 시시비비가 가려져야 한다.

  물론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은 다툼이 있는 사안이기 때문에 재판까지 가 봐야 한다는 신중론을 펼칠 것이고, 언제나 그랬듯 자신들의 수세적 입장을 만회하기 위해 또다른 맞불을 놓음으로써 물타기 작전에 들어갈 것이다. 이로 인해 한동안 여야는 “치열한” 정치공방전을 펼치겠지만 상황 추이에 따라 여야는 물밑 접촉을 통해 적당한 선에서 이 사건을 마무리 할 가능성 또한 배제할 수 없다.

  하지만 사안의 중대함을 볼 때, 박근헤 정부와 새누리당은 여론과 민의에 밀려 국정원 불법 선거 개입 의혹에 대한 사실관계의 일정 부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내몰릴 수 있다. 그러나 청와대와 여당은 MB의 “충복”이었던 당시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지나친 충정에서 야기된 개인의 사건으로 국한시켜 꼬리자르기에 나설 것이 분명하다. 현실적으로 법원 또한 법적 판결 이전에 정치적 판결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정원 대선 불법 개입 사건의 전말은 정확히 파헤쳐져야 한다. 기본적인 합리적 의문만을 가지더라도 박근혜 대통령으로부터 시작해서 새누리당-국정원-경찰로 이어지는 커넥션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지 않는가. 그렇기에 법원은 어떠한 압력에도 굴하지 말고 정확한 사실판단에 근거해 역사에 부끄럽지 않는 판결을 내림으로써 사법부의 독립성을 스스로 지켜나가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피해 당사자이기도 한 문재인 의원이 이미 언급했듯이 이제 와서 박근혜 대통령에게 선거의 책임을 묻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국정원 대선 불법 개입과 지난 12월16일에 있었던 경찰의 허위수사발표로 인해 당시 박근혜 후보는 대통령선거에서 많은 득을 보았다. 민변의 이재화 변호사는 그의 트위터에서 "강도죄에 가담하지 않았더라도 강취한 도품을 취득한 자는 장물취득죄로 처벌된다."는 말로 이 사건이 박근혜 대통령과 무관하지 않음을 지적하고 있다. 그렇다면 박근혜 대통령은 침묵으로 일관하기보다 대국민사과와 함께 두 번 다시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게 국정원과 경찰이 바로 설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갑자기 14대 대선 당시 민중후보인 백기완 선생 선거운동을 하던 대학생의 인터뷰가 생각난다. “지금 백기완 선생님을 위해 뛰지만 투표는 김대중 후보에게 할 생각입니다. 하지만 대통령은 김영삼 후보가 될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