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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2011~/중남미따라잡기

문명과 야만이라는 잣대

문명과 야만이라는 잣대


   우리에게 내재되어 있는 중남미사회에 대한 관념들은 너무 피상적일 뿐만 아니라 기존의 정보 또한 왜곡된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다보니 중남미국가들은 '못사는 나라, 위험한 나라'로만 각인되어 왔고 뉴스에서 어떤 큰 사건이 발생해야만 살짝 쳐다보게 되는 관심의 변방이기도 하다. 

  잠시 곱씹어 보자. 중남미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가? 물론 삼바, 살사, 탱고, 라틴댄스 등과 함께 매혹적인 카리브해변과 카니발(Carnaval)을 떠올릴 수도 있다. 커피와 축구 또한 빠지지 않는 이미지들 중의 하나일 것이다. 하지만 이런 생각과 더불어 군사 쿠데타, 독재, 무장게릴라들의 득세, 높은 인플레이션과 빈부격차, 납치와 유괴가 일상사처럼 빈번히 일어나는 나라, 사람들은 게으르고 가난할 뿐만 아니라 마약에 찌들어 있다는 이러한 이미지들이 떠오르지 않는가? 우리가 갖고 있는 중남미에 대한 잘못된 이미지들은 할리우드 영화에 의해 왜곡, 재생산된 부분이 없지 않다. 또한 많은 부분은 현재 그들의 모습이 아니기도 하다.

  만약 우리가 외국친구를 만났는데 한국에 대한 이미지가 부분적으로 1960년대에 머물러 있다면 어떨까? 게다가 자국 언론을 통해 접한 한국 소식이란 것들이 백화점과 대교가 붕괴되고 지하철 전동차가 불타고 원전비리가 터지는 등의 내용이어서 한국에 대한 이미지가 부정적으로 각인되어 있다면 말이다. 당연히 우리는 삼성이니 현대니 하는 '자랑스런' 대기업들과 1988년 올림픽과 2002년 월드컵 개최를 언급하며 핏대를 세우겠지만 이들 기업도 일본 기업으로 알고 있고 올림픽이나 월드컵은 어디에서 열렸는지조차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면 말이다. 미치고 환장할 노릇일 게다. 물론 어느 사회나 음과 양이 존재한다. 하지만 어느 한쪽만을 너무 과하게 부각시켜 실체적 진실을 호도하는 것은 야만적 행위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러면 이렇게 왜곡된 이미지들은 어디에서부터 유래하였을까?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가깝게는 근대 이후, 유럽에 의해 발전된 학문적 태도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약육강식, 적자생존(適者生存), 자연도태, 우승열패(優勝劣敗)와 같은 논리에 기반한 스펜서(Herbert Spencer, 1820~1903)의 사회진화론(Social Darwinism)은 유럽을 유전적으로 우등하고 선한 존재로 규정한 것과는 달리, 중남미를 포함한 비유럽국가들을 열등하고 악한 존재로 이해하게 하는 이론적 토대가 되었다.


다윈과 스펜서의 이론은 결국 히틀러의 '인종 청소'로 이어지게 된다.

  급기야 이러한 생각은 중남미 원주민들을 '말하는 동물'(Animal que habla)로 치부하게끔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이들을 강제로 데려와 전시하는 인간동물원(Human Zoos)이 19세기 유럽의 대중적 오락거리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그 원인을 제공하였다. 믿기 어려운 사실이지만 20세기 초까지도 유럽의 주요 15개 도시에서 인간동물원이 성업하였고 이러한 전시회는 비단 유럽에만 국한되지 않고 미국과 일본, 호주에서도 열리면서 1958년까지 14억이 넘는 관람객들이 다녀갔다고 한다. 게다가 이러한 동물원에 우리의 선조인 조선인도 포함되어 있었다고 한다.

  <슬픈열대>(Tristes tropiques, 1955)에서 인류사회학자인 레비 스트로스(Claude Levi Strauss, 1908~2009)가 주장하듯이, 유럽을 지배해 온 '문명'과 '야만'의 이분법적 사유는 근멸되어야 한다. 물론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는 오늘날, '인간동물원 : 야만인의 발명'(Human Zoos : The Invention of the Savage)이라는 전시회가 유럽의 심장부인 파리에서 열려 과거 자신들의 잘못된 만행을 고발할 만큼 외형적으로 이러한 현상들이 많이 사라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의 생활세계를 내밀히 들여다보면 지금도 서양에 의해 왜곡되어진 이미지들을 곳곳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일례로 '테러국'으로 각인되어 버린 아랍 국가들이 바로 그 대표적인 희생양일 것이다. 참고로 팔레스타인 출신의 세계적 석학인 에드워드 사이드(Edward Said, 1935~2003)의 대표적 저서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 1978)은 이렇게 왜곡된 현상들을 정확히 적시하고 있기 때문에 관심 있는 독자들의 일독을 권하는 바다.

이 글은 2013년 5월 4일자 <오마이뉴스 - 사는이야기 - 여행>에 함께 기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