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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세계스케치

신조어에 비친 우리 사회의 그늘

신조어에 비친 우리 사회의 그늘

 

  역대 최연소 비례대표 의원으로 여의도에 입성한 국민의당 김수민 의원이 4ㆍ13 총선 당시 국민의당 선거대책위 홍보위원장으로 있으면서 선거 관련 업체로부터 약 2억 원대 리베이트를 받은 혐의로 고발되어 의혹의 중심에 섰다. 김수민 의원은 일종의 청년비례 개념으로 국민의당에 영입되었지만 14대 국회에서 새누리당 전신인 민주자유당 비례대표를 지낸 김현배 전 의원(도시개발 대표이사)의 딸이라는 사실이 공개돼 - 조직력이 없는 정치신인의 등용문으로서 흙수저 인재를 발굴한다는 청년비례 대표 발탁의 취지와 달리 - 대표적인 금수저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1.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에 따라 금수저, 은수저, 동수저, 흙수저 등으로 나눠지는 이른바 ‘수저계급론’은 ‘88만원 세대’, ‘N포 세대’ 등으로 불리며 사회생활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다수의 2030 청춘들이, 노력해도 바뀌는 게 없다는 자조 끝에 나온 풍자적 신조어다. 여기엔 태어날 때부터 금수저를 입에 물고 나오는 아이들을 따라 잡을 수 없다는 21세기 한국사회의 '골품제'에 대한 젊은 세대의 반감이 자리 잡고 있다.
  동국대 김낙년(경제학과) 교수가 발표한 논문, “한국의 부의 불평등, 2000~2013 : 상속세 자료에 의한 접근”(2015년 10월)에 의하면, 2010~2013년 평균, 20세 이상 성인 인구의 상위 1%(또는 10%)가 전체 자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5.9%(또는 66%)인 반면 하위 50%는 불과 2% 이하인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기준으로 작성된 소득집중도에서는 상위 1%(또는 10%)가 전체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2.1%(또는 44.1%)로 조사되어, 부의 불평등이 소득불평등보다 높을 뿐만 아니라 최상위로 갈수록 양자의 격차가 두 배 이상 벌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연구 결과는 자본이 세습화되면서 ‘기회의 평등’이라는 민주주의적 가치가 현대자본주의 사회에서 점차 붕괴되어 가고 있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지난 12월에 발간된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사회통합 실태진단 및 대응방안Ⅱ』연구보고서는 이러한 실태를 더욱 선명하게 보여준다.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 사회가 이른바 산업화세대(1940년생~1959년생)와 민주화세대(1960년생~1974년생)를 거쳐 정보화세대(1975년생~1995년생)로 넘어오면서 직업지위와 계층의 고착화 현상이 더욱 두드러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에 의하면, 산업화세대에선 본인의 학력이 임금에 영향을 주는 거의 유일하고도 결정적인 변수였던 것과 달리, 민주화세대에서는 부모의 학력이 본인 학력과 더불어 임금수준에 큰 영향을 미치는 변수로 확인되었고 정보화세대로 넘어오면서부터는 부모의 학력과 함께 가족의 경제적 배경이 본인의 임금수준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정보화세대로 올수록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자녀들의 제도적 문화자본(학력)과 사회자본(인맥)뿐 아니라 경제자본(재산축적 및 임금과 직업 성취 등)에까지 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2.

  가난의 대물림이 뫼비우스의 띠처럼 질곡이 되어버린 사회, 프랑스의 역사경제학자 피케티(Thomas Piketty)는 이러한 사회를 세습자본주의(Patrimonial Capitalism)라고 명했지만 오늘날 한국의 젊은이들은 이러한 사회를 ‘헬조선’이라 부른다. 지옥을 뜻하는 영어 단어인 헬(Hell)에다가 조선을 덧붙임으로써 신분의 대물림이 거의 제도화된 한국 사회의 퇴행성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김낙년 교수는 <한겨레>와의 전화인터뷰에서 “부를 이전받는 사람이 소수에 불과한 상황에서, 물려받은 부가 자기 능력이나 성과에 따라 받는 보상보다 중요해진다면 부의 정당성에 대한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대다수의 젊은 세대들은 이러한 사회의 구조적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보다는 그저 참담한 현실을 재확인하면서 금수저들을 비난하거나 내가 흙수저로 태어났다는 사실에 우선적으로 분개하고 절망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러한 현상은 이십대 태반이 백수라는 ‘이태백’, 인문계 졸업자는 90%가 논다는 ‘인구론’, 연애ㆍ결혼ㆍ출산을 포기한 ‘3포 세대’를 넘어 취업과 주택 마련까지 포기한 ‘5포 세대’, 최근에는 인간관계와 희망까지 포기한 ‘7포 세대’와 아예 그 항목을 일일이 열거할 수도 없다는 ‘N포 세대’ 등을 관통하고 있는 슬픈 절망의 코드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한편 또 다른 현상으로는 이러한 헬조선에서 탈출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개성공단 폐쇄와 한일위안부 협상, 역사교과서 국정화 및 세월호 참사와 메르스 파동 등을 통해 드러난 현 정부의 일방적이고도 무책임한 통치방식과 사회 곳곳에서 벌어지는 갑질 논란 등을 목도하면서 탈조선의 러시는 더욱 거세지고 있다. 비단 이러한 현상은 젊은 층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2016년 3월 전국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마크로밀엠브레인의 트렌드모니터가 설문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76.9%가 이민을 고려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고 69.1%가 이민을 가려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은 우리나라에 희망이 없기 때문이라는 문항에 동의했다. 반면 다시 태어나도 대한민국에서 태어나고 싶은지의 여부에 대해 26.5%만이 그렇다고 대답했다.
  이에 대해 고려대 윤인진(사회학과) 교수는 “단순한 청년문제가 아니라 재화가 소수 특권층에 편중되면서 일반 국민들에겐 기회가 박탈되고 생활이 불안정해지는 불평등의 문제”라며 “여러 분야에서 공정하지 못한 것에 대한 비판과 좌절감, 그로 인한 중산층 몰락과 부의 편중 문제를 본질적으로 바라봐야 한다.”라고 지적하고 있다.

 

 

  3.

  2016년 6월 7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소득과 부의 불평등 : 실상과 원인 및 전망>이라는 토론회에서 경북대 이정우(경제통상학부) 명예교수는 IMF 이후 역대 정권들의 성장과 분배 정책을 평가했다. 먼저 상대적 진보정부였던 김대중과 노무현 정부는 적극적인 분배ㆍ복지 정책을 펼쳤지만 외환위기의 여파로 성장률이 낮아 기대수준의 분배 개선에는 이르지 못했다고 언급한 후, 이명박 정부에서는 낙수효과와 ‘줄푸세’ 정책으로 인해 소득 불평등이 악화되었고, 박근혜 정부 역시 집권 후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를 외면했다고 비판했다. 이어 이정우 교수는 시장맹신주의와 성장지상주의가 우리의 경제를 배제와 박탈의 경제로 만들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인권, 자유, 복지, 평등, 연대 등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나눔과 포용의 경제’로 전환할 것을 주장했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불공정하고 불평등한 사회적 구조의 문제는 도외시한 채 - 각료회의를 통해 - ‘열심히 노력하면 불가능하다고 생각되는 것도 이룰 수 있다’고 언급하는가 하면, 한국의 보수언론은 흙수저 탓만 하는 젊은 세대에게 ‘하늘이 감동할 만큼 노력해 보았느냐’고 되묻고 있다.
  분명한 것은 헬조선 담론과 수저계급론의 핵심이 부의 편중과 기회의 불공정이 구조화되고 고착화되어 버린 오늘날의 한국사회에 대한 비판이자 통찰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성장의 사다리가 끊어져버린 한국사회에서 저임금과 고용불안 등으로 인해 고통을 감내할 수밖에 없는 - 유전자 로또에 당첨되지 못한 - 대다수의 청년들이 스스로 일어나 부의 대물림을 방지하기 위한 과세정책과 교육개혁, 강자에 의한 차별과 약탈을 방지할 수 있는 적절한 규제가 시대적 과제가 될 수 있도록 투표를 통해 지속적으로 자신들의 목소리를 표출해야 한다.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