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position 8> & Wassili Kandinsky
표현주의는 개연성과 모사의 원칙을 벗어나서 자립적인 색체와 은유를 지향하는, 곧 추상성을 지향하는 운동이며, 형식적 원칙에 구애받지 않고 표현하고 창조하려는 열렬한 욕망이며, 순전히 사사로운 것, 개인적인 것 대신에 전형적인 것, 본질적인 것에 대한 관심이며, 환희와 절망에 탐닉하는 까닭에 과장된 것과 괴기한 것으로 기우는 경향이며, 계시적인 뉘앙스가 빈번히 나타나는 신비롭고 종교적이기까지 한 현상이며, 자연주의적 입장이 아니라 보편과 본질의 관점에서 본 도시와 기계에 대한, ‘지금 이곳’에 대한 위기의식이며, 전통에 거슬러 모반하고 새로운 것, 이상스러운 것을 그리워하는 충동이다. - R. S. Furness.
19세기로부터 20세기로의 이행속에서 유럽에 나타난 특징들을 한마디로 단언한다면 ‘이즘’들의 화려한 혼란이라 정의할 수 있다. 그 중 우리가 간과해선 안될 사조로는 자연주의와 인상주의 경향, 그리고 상징주의와 신낭만주의 경향이다. 특히 전자는 인생 속에서 기술하고 언급할 가치가 있는 자료를 구하였고 후자는 현실세계로부터 도피하여 가공의 천국과 탈속의 아름다움을 창조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자연주의와 인상주의는 사물의 표면에 너무 가까이 머물렀고, 상징주의와 신낭만주의는 탈속과 세련을 향한 도피를 획책하는 과정에서 지나친 탐미, 퇴폐, 빈곤에 빠졌다. 그래서 새로운 시각, 새로운 정력, 새로운 동요가 요청되었고 급기야 등장한 것이 표현주의(Expressionism)이다.
이러한 표현주의는 언제나 사회적 변혁기나 정신적 위기의 시기에 두드러지게 나타났으며, 특히 제1차 세계대전 이전의 시기와 양차 세계대전 사이에 독일을 중심으로 오스트리아, 프랑스, 러시아 등지에서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표현주의의 근원에는 ① 강렬한 주관성과 ‘새로운 인간’- 짜라투스트라, 초인 - 에 대한 요청으로 나타나는 니체의 활력주의(vitalism), ② 기계의 시대를 열광적으로 찬양하는 마리네티의 미래주의(futurism), ③ 인간과 기계, 모든 것을 열렬하게 범신론적으로 포용할 것을 주장한 휘트만의 범신주의(pantheism), ④ 도스토예프스키(Fydor Mikhailovich Dostoevskii)의 몰이성적인 암흑에 대한 심리적인 탐색이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또한 ⑤ 주관적인 힘과 극단적인 변화를 강조한 베르그송(Henri Bergson)의 영향력 또한 간과해선 안 될 것이다. 1
이러한 표현주의의 부인할 수 없는 경향을 단적으로 말하자면 자연스러운 것, 그럴싸한 것, 정상적인 것을 벗어나서 원시적인 것, 추상적인 것, 격정적인 것, 날카로운 것을 지향한다는 점이다.
독일의 표현주의적 현대 화가는 두 분파로 나뉘어져 있다. 그 하나가 1905년 드레스덴의 ‘브뤼케’(Die Brucke)그룹으로 헤켈(E. Heckel)과 슈미트 로트루프(karl Schmidt-Rottluff)가 이에 속했고 다음은 1912년 뮌헨의 ‘청기사’(Der blaue Reiter)그룹 2으로 프란츠 마르크(Franz Mare), 아우구스트 마케(August Macke)와 특히 칸딘스키(Wassili Kandinsky)와 같은 유명한 이름들이 이에 속하였다. 3
이들의 작품은 대부분이 좌절, 불안, 혐오, 격정 등 보통 그들의 현대 생활에서 부딪히는 진부하고 불쾌한 여러 가지 모순들에 반응하여 생겨나는 일종의 광적인 강렬한 느낌을 표현하고 있다. 특히 굵고 비뚤어진 선과 거친 색체 대비를 사용한 목판화는 독일의 표현주의 미술가들이 즐겨 사용한 매체였다.
또한 독일의 문학적 표현주의는 1911년 베를린에서 프란츠 펨페르트(Franz Pfemfert)가 설립한 진일보한 잡지 『행동』(Die Aktion)에 판 호디스의 <세계의 끝>(Weltende)이라는 시와 그 뒤를 곧 잇는 알프레트 리히텐슈타인의 <황혼>(Die Dämmerung)이 실리면서 시작되었다. 이들 시가 의도하는 바는 의미 있는 질서의 반영이 아니라 시인이 세계 내에서 느끼는 피해와 부조화의 감각을 ‘표현’하는 것이었다.
특히 이들은 단어와 단어의 연계성보다는 독립적인 은유를 순수하게 강조함으로써 두 단어에 나타난 의미 연관성보다는 극도의 주관성을 강조하였는데, 그 예로 기욤 아뽈리네르(Guillaume Apollinaire)의 시 <지대>(Zone)의 끝부분, “목잘린 태양, 안녕, 안녕”과 같은 것을 들 수 있다. 여기서 태양과 잘리운 목과의 연결은 그 사실적 근거가 참으로 엷다. 그러나 그 속에는 종결(終結), 최후, 석양, 붉은 색, 피와 같은 비교의 핵심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양태는 현대시의 특징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표현주의는 보다 나은 세계에 대한 막연한 동경과 지나치게 시적인 언어의 사용 및 대체로 매우 개성적이고 난해한 성격의 표현방식으로 인하여 곧 쇠퇴해져 갔다. 특히 1924년 이후 독일에서 부분적으로 안정이 회복되고 보다 공공연한 정치적 형태의 사회비판적 사실주의가 전개되면서 1920년대 후반에는 표현주의의 쇠퇴가 더욱 가속화되다가 1933년 나찌가 정권을 잡자 표현주의는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다.
나찌는 거의 모든 표현주의 예술가들의 작품을 퇴폐미술로 규정하고 작품의 전시 및 발표를 금하였고 종국에는 창작 자체를 금지했다. 그로 말미암아 수많은 표현주의 예술가들이 미국 등 외국으로 망명하게 된다.
그러나 표현주의를 대체한 새로운 경향들 - 다다이즘(dadaism), 신즉물주의(Die Neue Sachlichket) 4, 초현실주의(Surrealism) 5 - 에서도 표현주의의 영향은 역력하다. 6
다다이스트들의 허무주의적 기행과 그들의 반예술 및 고의적인 충격 전술, 신즉물주의에 나타나는 현대풍과 대도시적 묘사, 초현실주의에 나타난 ‘표현’에 대한 강조와 아울러 제약으로부터의 해방과 비편의 중요성에 대한 강조가 그러하다.
당시 표현주의에 영향을 받은 독일영화의 특징으로는 기울어진 카메라, 기괴하고 부조화스러운 세팅, 대조가 강한 조명, 주제 또한 초현실적이거나 괴기스러움, 등장인물의 주관적이고도 때로는 광적인 세계를 스크린 위에 그대로 투영하고자 하는 것 등을 들 수 있다. 이러한 표현주의 영화의 특징은 스타일 측면에서 호러영화와 필름 느와르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대표작으로는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 The Cabinet of Dr. Caligari>(1919, Robert Wiene)을 들 수 있다.
- 마리네티의 소설 『미래주의자 마파르카』(Mafarka le Futuriste ,1909)는 날으는 기계적인 초인이 결국 우주를 정복하는 전말을 그리고 있다. 이러한 그의 사상은 인간을 현대의 프로메테우스(Prometheus)로, 기계(기차, 비행기, 자동차와 같은)를 자유와 탈출의 보증인으로 보았다. 그러나 여러 해 후에 독일의 게오르크 카이저(Georg Kaiser), 에른스트 톨러(Ernst Toller), 미국의 유진 오닐(Eugene O'Neill)과 엘머 라이스(Elmer Rice)는 - 마리네티의 미래주의에서는 찬양된 - 기계라는 괴물의 극도의 포악성을 묘사하게 된다. [본문으로]
- 1905년 독일의 ‘드레스덴 실업학교’의 건축학과 학생 4명(카를 슈미트 로틀루프, 프리츠 블레일, 에리히 헤켈, 에른스트 루트비히 키르히너)을 중심으로 결성된 이 브뤼케파는 원시주의에 영향을 받아 대담한 윤곽선과 강렬한 색면을 강조한 단순한 양식으로 온갖 다양한 주제들(인물, 풍경, 초상, 정물 등)을 그림과 판화로 제작하였다. 또한 이들의 특징으로는 인간의 투쟁과 고통, 공포나 불안을 노골적으로 표현하고 있음을 지적할 수 있다. [본문으로]
- 뮌헨에서 결성된 미술가 집단으로 창립회원인 프란츠 마르크와 바실리 칸딘스키가 『청기사』라는 미학평론집을 공동 편집함으로 말미암아 이 책의 이름을 따서 청기사파라 불리워졌다. 이들은 특별한 운동이나 유파가 아니라 뚜렷한 프로그램 없이 다만 1911~1914년에 걸쳐 작품을 함께 전시했던 많은 미술가들을 지칭하는 것으로, 앞서 생겨난 브뤼케파와는 달리 이들의 표현주의는 서정적 추상의 형태를 띠었으며 다양한 양식적 특징을 보였다. 특히 이들은 일종의 신비감을 형상으로 나타내고자 그들의 미술에 깊은 정신적 의미를 불어넣고자 했다. [본문으로]
- dada는 '목마'를 뜻하는 프랑스어로, 20세기 초반 주로 취리히와 뉴욕, 베를린, 쾰른, 파리 및 독일의 하노버 등지에서 활발했던 허무주의적 예술운동으로, 그 특징으로는 허무주의적이고 반합리주의적인 사회비판과 예술의 형식상의 모든 인습을 무차별 공격하는 태도를 들 수 있다. 이 운동에 참여한 여러 사람들이 ‘다다’(또는 다다이즘)라는 이름을 갖게 된 이유를 여러 가지로 설명하고 있지만 그중 가장 널리 알려진 설에 따르면, 1916년 취리히에 후고 발이 운영하는 볼테르 카바레(카페)에서 젊은 예술가들과 반전주의자들이 모임을 가지곤 했는데, 한번은 프랑스어-독일어 사전에 끼워져 있던 종이 자르는 칼이 우연히 ‘다다’라는 단어를 가리키고 있어, 모임에 참석한 사람들이 이 단어가 정통주의 미학에 반기를 든 자신들의 예술 활동과 반전운동을 가장 적절하게 표현하고 있다고 생각하여 이를 채택했다고 한다. [본문으로]
- 1920년경 표현주의에 대한 반동으로 일어난 유럽의 회화경향으로, 특히 독일에서 중심적으로 진행되는 일종의 특수한 사실주의이다. 이 신즉물주의는 대개 3가지 경향으로 세분되는데 그 첫째가 사실 묘사파로 이들은 대개 신랄하고 사회 비판적인 특성을 보여주고 있으며, 둘째로는 부분적으로 이탈리아의 형이상학파 화풍에서 영향을 받은 매끄럽고 차분하며 정적인 특성을 보여주는 고전적인 경향, 셋째로는 프랑스 화가 앙리 루소의 양식을 본뜬 고의적인 천진난만함을 특징으로 하는 루소파를 들 수 있다. [본문으로]
- 초현실주의는 양차 세계대전 사이에 유럽에서 일어난 문학 및 시각예술 운동으로, 제1차 세계대전 이전의 반예술 운동인 초기 다다이즘처럼 부정 그 자체를 강조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에 대한 적극적인 표현을 강조하였으며, 과거 유럽 문화와 정치를 주도해왔던 이성주의가 결국 이 세계의 파괴를 야기시켰다고 보고 그에 대한 반대로 - 프로이드의 이론을 원용하여 - 심리적인 무의식의 세계를 통해 경험의 의식적 세계와 무의식적 세계를 연결시키려 하였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