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여행/~2010/동북아

세계화를 넘어 다시 나에게로 이르는 여정


세계화를 넘어 다시 나에게로 이르는 여정


  9개국 14명의 간사들이 참가한 제25회 아시아태평양YMCA(APAY, Asia and Pacific Alliance of YMCA's) 중견간사교육(ASP, Advanced Studies Programme)은 2007년 10월 30일부터 5주간 홍콩 우카이샤 YMCA 캠프장(Wu Kwai Sha Youth Village)에서 개최되었다. 우연이지만 이곳 우카이샤 캠프장은 2005년 홍콩에서 WTO회의가 열렸을 때, 한국 농민들이 묵었던 곳이라고 한다.

  첫 만남은 서로 어색했지만 비를 맞으며 열린 BBQ 파티에서 참가자들은 화로 앞에 오순도순 모여 앉아 서먹함의 벽을 녹여버렸다. 이렇게 홍콩에서의 중견간사교육은 시작되었다.



우리의 우물에서 생수를 마시련다.

  첫 주는 YMCA의 근간이 되는 신학적 기초에 대한 과정이었다. 인도에서 온 데이빗(David)과 함께 '예수는 그리스도이지만 왜 그리스도가 예수여야만 하는가'라는 기독론으로부터 시작해서 우리가 살고 있는 아시아의 현실 속에서 어떻게 하느님을 이해하고 고백할 것인가에 이르기까지 YMCA의 "C"에 대한 현실적 고민들을 통한 정체성 탐구가 이어졌다.

  하지만 이 과정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돕기 위해서는 먼저 아시아적 상황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했고, 이를 위해 현대신학의 흐름 중 "제3세계 신학"이라 일컫는 남미해방신학, 한국민중신학, 대만버팔로신학 등 다양한 신학의 흐름이 소개되면서 이들이 어떻게 자신이 처한 삶 속에서 기독교적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였는지 살펴보았다.

  그리고는 다시 나의 내면으로 다가가 나에게 있어 예수는 누구이며, 누가 이웃이며, 예수를 믿는(따르는) 사람으로서 나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농익은 물음들을 던지면서 한 주를 보냈다.

"지리의 종말"(The end of geography)과 "지구촌"(Planetary village)의 탄생

  둘째 주와 셋째 주는 세계화(Globalisation)의 현상과 이에 대한 시민사회의 응답을 다루는 시간이었다. 먼저 참가자들은 고령화문제, 저출산문제, 청년실업문제, 외국인 노동자 및 이주여성문제, 빈곤문제 등 자국의 이슈들을 공유하는 시간을 가진 후, 이러한 현상들이 비단 자신의 나라에 국한된 것인지 아니면 세계화와 관련된 것인지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세계화"에 대해 접근해 들어갔다.

  세계화와 관련된 참가자들의 논의는 "문명의 충돌"이라는 관점보다는 신자유주의와 관련한 자유시장자본주의에 초점이 맞추어졌고, 신자유주의자들이 주장하듯  "완전경쟁시장"이라는 조건을 전제로 한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한 최적의 자본배분은 이데올로기의 종언 이후 또 다른 전체주의적 이데올로기에 불과할 뿐만 아니라 현실적으로는 시장민주주의를 가져오기보다는 시장권위주의(Market Authoritarianism)로의 퇴행을 낳을 것이라는데 기본적 합의가 이루어졌다. 이는 - 스티글리츠(Stiglitz)의 말을 빌린다면 - 발가벗은 임금님의 동화에서 임금님의 옷이 보이지 않는 것은 옷이 없기 때문인 것과 마찬가지로 손이 보이지 않는 것은 손이 없기 때문인 것이다.(Stiglitz, 1990)

  이와 함께 자본, 생산, 경영, 시장, 노동, 정보, 기술의 발달로 인한 지구촌 경제시대가 도래하면서 "지리의 종말"과 함께 영토국가의 위상이 흔들리고 있는 상황 아래, 참가자들은 세계화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 경쟁에 낙오한 이들의 피난처가 되었던 국가라는 존재의 약화가 결국엔 사회적 불평등의 심화를 동반하고 있음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나타내면서 논의의 주제는 시민사회의 역할에 대한 이야기들로 자연스레 옮겨졌다.

  특히 이 기간 동안 참가자들은 홍콩에서 도시빈민들의 권익을 위해 일하는 SoCO(Society of Community Organisation)와 이주노동자들의 권익을 위해 일하는 Bethune House엘 들려 이들 단체들의 설립목적과 주요활동들을 소개받으면서 세계화의 일선에서 활동하고 있는 시민사회의 노력들을 살펴볼 수 있는 기회를 가졌고 이러한 탐방 프로그램은 참가자들의 논의에 풍성함을 더해 주었다.
  홍콩에서의 둘째 주와 셋째 주는 어떻게 시민사회가 세계화라는 큰 흐름 속에서 "시장"을 견제하며, 생명과 평화가 넘치는 하느님나라를 이 땅에 이룩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들과 함께 흘러갔다.


홍콩의 음과 양  

이 땅에 하느님나라를 이루기 위해


  넷째 주는 YMCA 미션에 대한 재정립을 통해 이제껏 논의되었던 이슈들을 YMCA의 시각에서 재조명해 보는 시간이었다. 먼저 YMCA의 근간이 되는 - 1855년 세계기독교청년회연맹 창립총회에서 채택되고 1955년 세계대회에서 확인된 - "파리기준"(The Paris Basis)에서부터 출발하여 다변화된 사회 속에서 파리기준을 시대정신에 맞게 새롭게 재조명한 "캄팔라원칙"(The Kampala Principles), 나아가 21세기를 맞이한 오늘날 더욱 복잡해진 사회구조 속에서 시대의 부름에 응답하기 위해 만들어진 "도전 21"(Challenge 21)에 이르기까지 참가자들은 아시아태평양YMCA 사무총장인 입(Yip)과 함께 열심에 열심을 더 하였고 이러한 바탕 위에 참가자들은 자국의 YMCA 목적문들을 소개하였다.

  특히 경제가 주도하는 세계화의 흐름 속에서 이윤의 극대화를 위해 식량과 의료, 건강은 물론 문화마저 상품화하며,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생명을 조작함으로써 하느님의 창조질서를 근원적으로 위협하고 있는 이때, "지구적으로 생각하고 지역적으로 행동하라"(Think Globally, Act Locally)는 화두 앞에서 아시아YMCA의 운동은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한 방법론적 탐색이 이어졌고, "세방화"(Glocalisation : Global + Localisation)라는 말에서 나타나듯, YMCA운동은 언제나 자신이 딛고 있는 자리에서부터 구체적으로 해 나가야 함과 동시에 아시아YMCA에서 일하는 실무자들의 실질적 네트워킹을 통해 아시아적 연대가 필요함을 함께 공감하였다.

  나 또한 1976년 제23차 대한기독교청년회연맹 전국대회에서 채택된 "한국YMCA의 목적문"과 2004년, 한국YMCA 비전선포식에서 선포된 "비전선언문"을 소개하면서 "꿈꾸는 젊은이, 함께 가꾸는 지역사회, 평화로운 지구촌" 건설을 위해 한국YMCA가 어떠한 활동들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세계화를 넘어 나에게로 돌아오는 여정

  마지막 다섯째 주를 맞이하였다. 함께 첫 인사를 나눈 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홍콩에서의 중견간사교육은 막바지에 다다른 것이다. 3일간은 이제껏 함께 토론하고 배웠던 것들을 토대로 각자 자기 지역 YMCA로 돌아가서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활동계획서(Action Plan)를 작성한 후 나머지 이틀 동안은 돌아가며 발표하고 질의하는 시간들을 가졌다.
  기후변화와 관련한 지역에서의 교육프로그램으로부터 시작해서 빈민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하는 복지프로그램, 지역사회 만들기의 일환으로 이야기된 살기 좋은 마을만들기에 이르기까지 이제껏 함께 나누었던 토양을 바탕으로 각자의 열매들을 함께 나누면서 참가자들은 5주간의 일정을 자축하였다. 더불어 ASP 수료식 때에는 세계YMCA연맹 사무총장을 비롯하여 여러 나라의 선배 실무자들이 찾아와 함께 축하해 주어 그 의미를 더욱 배가시켰다.

  홍콩에서의 마지막 밤, 어느덧 한 식구가 되어 버린 동료들의 눈에는 아쉬움이 묻어난다. 누군가를 새로 만난다는 일은 "처음"이라는 말처럼 설레고 긴장되지만 누군가와 헤어지게 되는 일은 늘 적응하기 힘든 아쉬움의 연속이다.

  나의 마음 한편에 이미 똬리를 튼 아시아YMCA 동료들을 뒤로 하고 공항으로 향하면서 "만날 때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고 말했던 한용운의 <님의 침묵>을 떠올려본다.

  2008년 신년호 / 진주YMCA 소식지 꿈땅 탐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