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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2011~/동북아

대마도에서 마치즈쿠리에 대한 성찰


  2011년 11월 22일(화)

 어젯밤 11시 정도에 잠이 들어 아침 8시 가까이 되어서야 눈을 떴다. 푹 자서 그런지 몸이 개운하다. 아침식사 시간이 8시부터라고 해서 짐부터 꾸려 놓고는 1층 호텔 식당으로 향했다.
  우리나라로 따지면 정식 정도 되는 식사인데 맛난 미소국과 김치가 있어 먹을 만하다.

  대마도(對馬島)에서의 마지막 식사가 될 오늘 점심은 식당에서 맛난 걸 사먹으리라 생각하며, 오전 10시가 다 되어서야 가방을 호텔에 맡기고 밖으로 나왔다. 돌아가는 배편이 오후 3시40분이었기에 2시30분까지만 도착하면 넉넉할 듯 했다. 결국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점심식사 시간을 포함해서 5시간 정도, 이즈하라(嚴原町)를 느긋하게 둘러볼 수 있는 시간이다. 먼저 호텔 옆에 있는 하치민구 신사(八幡宮 神社)엘 들렸다.

  이어서 쓰시마(Tsushima) 남부경찰서를 지나 보건소 방향으로 쭉 올라가서는 국도 382호 양 옆으로 나 있는 샛길들을 헤집고 들어가 보았다. 이즈하라에는 일본하면 응당 떠오르는 신사뿐만 아니라 조동종이나 임제종에 속한 불교 사찰들도 간간히 눈에 띄었다. 

  빌라(Flat)와 같은 몇몇 다세대주택들도 보였지만 대부분의 집들은 정원을 끼고 있는 주택들이었고, 이들 중에는 담장이 없는 가옥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담벼락이 있더라도 낮거나 아니면 대문이 없는 집들도 많았고, 설령 대문이 있는 집들도 안이 들여다보이게끔 만들어 놓아 좁은 공간이 상대적으로 넓어 보였다. 우리나라에서도 대구를 시작으로 담장허물기 운동이 전개되었는데 마을만들기 운동과 접목되어 좀 더 동력이 붙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한편, 어제 버스를 타고 가며 보았듯이, 골목마다 불법주차 차량은 보이질 않았다. 대부분의 집들에 전용주차장이 마련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골목 도처에 공용주차시설들이 잘 설치되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자동차에서 해방된 길 위에는 쓰레기 하나 보이지 않는 깨끗함이 유지되고 있었다. 역시 ‘일본답다’는 생각과 함께 ‘그럼 한국다운 것은 무엇일까’ 라는 의구심이 뇌리를 파고든다. 개발과 발전이라는 미명하에 ‘한국다움’을 등한시 한 우리의 모습이 떠오르면서 살포시 부끄러움이 스며든다.  

  어제 대마도의 대중교통 이야기를 잠시 했었는데 버스정류소에 대해서도 몇 줄 언급하자면, 대마도의 모든 버스정류소 팻말 아래에는 평일, 토요일, 그리고 일요일과 공휴일로 나누어진 버스운행시간표가 게재되어있다. 물론 많은 돈을 들여 세련되고 화려하게 만들어 놓지는 않았지만 외국인인 내가 봐도 별 어려움 없이 이해할 수 있게 되어 있다.

  하지만 한국은 어떠한가? 아직도 변두리로 가보면 여기가 버스정류소라는 표시만 있지 어떤 버스가 서는지, 그리고 그 버스가 어디로 가는지에 대한 정보가 아무것도 없다. 그 지역에 사는 사람들만이 알 수 있는 불친절한 시스템이다. 상황이 이러한대도 지자체 정부들은 너도나도 버스정보시스템(BIS)을 설치해 버스 이용객들의 불편을 해소하겠다고 한다. 하지만 현실은 예산문제로 인해 사람들이 많이 이용하는 정류소를 중심으로 해서 BIS가 설치되어 있을 뿐이다. 
  도농통합도시인 경남 진주의 경우만 해도 BIS 설치 후 매년 관리보수비용으로만 5,000만원 이상의 예산을 들이면서도 도심을 벋어난 정류소에는 아직도 버스정류소 팻말 외에 아무것도 없는 곳이 허다하다.
  그래서 작년 경상남도 버스요금심의를 할 때, 교통정책과장에게 공개적으로 건의를 했지만 그때만 대충 넘어가려 할 뿐 감감무소식이다. 이러한 상황은 비단 경상남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큰 돈 들이지 않고도 대중교통 이용자들의 편의를 도모할 수 있는 방법은 다양한데 안타깝기만 하다. 대중교통 정책을 세우는 양반들이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않으니 알 수가 있나...

  이런저런 생각의 흐름을 따라가다보니 벌써 시간이 많이 흘렀다. 오며가며 봐 두었던 센료(千両)라는 식당으로 가서 미소라멘 세트를 하나 시켜 먹는다.(980엔) 맛이 깔끔하다. 

  허기를 채우고는 카스마키(かすまき)[각주:1] 전문점으로 가서 할머니를 위해 카스마키(5개입)를 구입하고는 호텔로 되돌아 와서 맡겨 두었던 가방을 찾아 이즈하라 여객터미널로 향한다. 이제 대마도와 이별할 시간이다.
  짧은 여행이었지만 ‘마을’에 대한 다양한 단상들과 함께 일본의 마치즈쿠리(まちづくり / 도시의 지역사회 재생 운동)에 대해 다시 한 번 성찰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된 듯하다. 물론 중요한 것은 결과물에 대한 물리적 이식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의 민주적 절차를 배워야 하는 것은 당연지사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사또우 시게루(佐藤滋)가 언급하는 ‘주민/토지소유권자 주체의 원칙, 주변 주거환경 향상의 원칙, 점진성의 원칙, 장소의 문맥과 지역성 중시의 원칙, 종합성의 원칙(교육, 복지, 산업진흥과 일치), 파트너십의 원칙, 개인 계발의 원칙’이라는 마치즈쿠리의 7가지 원칙은 세이공청(洗耳恭聽)할만 하다.[각주:2] 

  3시가 되자 이즈하라 여객터미널에서 출국수속을 시작한다. 간단한 약식 절차를 밟고 배에 승선하니 3시40분 정시에 배가 출항을 한다. 약 2시간 가까이 소요되어 5시30분이 되자 배는 부산에 도착했다.
  어둑어둑하다. 다시 자동차에 의해 정복되어버린 도시, 부산의 일상으로 파고든다.


  1. 단팥소를 카스테라풍의 두꺼운 스펀지 케이크로 싼 카스마키는 대마도를 대표하는 일본식 빵으로 카스테라의‘카스’와‘말다’라는 뜻의 일본어‘마키’(まき)가 합쳐진 것이다. [본문으로]
  2. 사또우 시게루(佐藤滋), 신중진 譯, “마치즈쿠리란 무엇인가”, 도시와빈곤 제50권, (2001. 06), 128~143 참조.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