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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세계스케치

먹방에서 쿡방으로, 푸드포르노시대

먹방에서 쿡방으로, 푸드포르노시대


“당신이 먹은 것이 무엇인지 말해 달라. 그러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말해주겠다.” 브리야 사바랭(Jean Anthelme Brillat-Savarin, 1755~1826)의『미식예찬』중에서 

1. 가난과 굶주림의 상징인 보릿고개의 상흔(Trauma)을 간직한 우리의 역사에서 ‘먹는다’는 행위는 축복이자 덕담의 의미를 지닌다. 만나는 사람에게 식사했냐는 인사는 가장 인간적이고 배려 깊은 예절로서 생존의 숭고함을 내포하고 있다. 그렇기에 1970년대 ‘잘 먹었다’는 말은 가난의 탈출을 의미했고 1980~90년대 도처에서 피어오르던 삼겹살 문화는 가난의 종식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셰프’(Chef)라는 단어는 사치스런 외국어였을 뿐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먹방’(음식을 맛있게 먹는 방송)이 잦아지더니 이제는 먹방에서 한층 더 진화된 ‘쿡방’(직접 요리를 시연하는 방송)이 대세를 이루면서 ‘푸드 포르노’(Food Porno)[각주:1]란 말이 어색하지 않게 회자되고 있다.[각주:2]

  <냉장고를 부탁해>(JTBC)를 필두로 셰프들은 단시간에 존재감을 드러내며 스타로 떠올랐고 ‘셰프돌’이라는 신조어가 등장했다. ‘허세셰프’ 최현석을 비롯해 ‘중식의 대가’ 이연복, ‘맛깡패’ 정창욱, ‘성자셰프’ 샘킴 등 ‘셰프테이너’(셰프+엔터테이너)들이 쿡방을 넘어 다양한 프로그램과 CF에서 종횡무진 활약하면서 채널을 돌리기만 하면 요리 프로그램들과 셰프테이너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가히 ‘유비쿼터스(Ubiquitous) 쿡방’이라는 볼멘소리가 들릴 만도 하다.

    그중에서도 백미는 당연히 백종원이다. 그 흔한 조리사 자격증 하나 없는 그가 <마이 리틀 텔레비전>(MBC)과 <집밥 백선생>(TVN)을 통해 최고의 스타로 떠올랐다. <냉장고를 부탁해>가 일반인이 범접하기 힘든 셰프들의 요리쇼에 가까웠던 것과는 달리, 백종원은 자신의 소탈한 화술과 누구나 따라할 수 있는 간단한 레시피를 앞세워 요리의 대중화를 이끌어내면서 이러한 현상의 정점에 선 것이다.
   요 근래에는 먹방과 쿡방(이하 먹쿡방)에다 토크, 여행 등을 접목시켜 먹쿡방의 복합장르화가 진행되면서 2015년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문화 트렌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2. 먹쿡방의 인기 이면에는 ➊ 미혼, 만혼, 이혼, 고령화로 인한 - ‘싱글족’, ‘나홀로족’이라고 불리는 - 1인 가구의 증가 현상과 무관하지 않다.[각주:3] 1인 가구의 급증이 문화생활과 소비에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지 2012년 1월 1일부터 2014년 5월 31일까지 2년 5개월간 네이버의 ‘블로그’, ‘카페’, ‘지식인’에 작성된 온라인 게시글과 댓글 462,112건을 대상으로 Buzz MetriX가 소셜 빅데이터 분석을 한 결과, 혼자 사는 싱글족의 주관심사로 주거형태(24.9%)와 여가(20.2%)를 제치고 식사가 38.4%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각주:4] 즉 끼니를 혼자 해결해야 하는 ‘혼밥족’(혼자 밥을 먹는 사람들을 일컫는 신조어)에게 ‘오늘 뭐 해 먹지?’와 같은 일상의 고민이 큰 문제로 등장하였고 먹쿡방은 이러한 틈새를 정확하게 공략했다는 것이다. 또한 1인 가구의 증가와 함께 공동체의 해체로 인한 인간관계의 단절 현상이 음식을 함께 먹으면서 가족의 정을 쌓았던 과거에 대한 향수를 촉발시켰고, 먹쿡방이 외로움과 허전함, 가족의 정에 대한 욕구를 간접적으로 충족시켜주면서 큰 인기를 얻게 되었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각주:5] 그렇기에 먹쿡방은 1인 가구의 증가에 따른 혼밥족의 등장과 한국 특유의 음식 나누기 문화가 절묘하게 결합되어 나타난 새로운 방송 형태라고 볼 수 있다.

   ➋ 이러한 먹쿡방의 지속적인 인기는 경제 불황의 반증이라는 분석도 있다. <집밥 백선생>을 연출하고 있는 고민구 PD는 “삶이 팍팍해지고 사는 게 어려워지면서 취직해서 돈 모아 집을 사는 거시적인 목표에 매달리기보다 작은 데서 삶의 의미를 찾으려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 같다”면서 “보여주기식 쿡방이 아니라 실제 조리 시간과 동일하게 속도를 맞춰 시청자들이 쉽게 따라하도록 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설명했다.[각주:6] 영국의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도 한국의 먹방(Mokbang) 열풍을 보도하면서 그 원인이 경기 침체로 인한 한국인의 불안과 불행에 있다고 설명했다. 이코노미스트는 요리 자체보다 재미에 치중하는 방송이 우아하게 식사할 여유가 없는 한국인에게 대리만족과 눈요기를 제공한다고 분석하기도 했다.[각주:7]

   ➌ 먹쿡방의 유행은 여성의 사회적 진출이 늘어나면서 가부장적 남성상이 점차 힘을 받지 못하는 사회적 변화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남자는 밖에서 일하고 여자는 안에서 음식을 만든다는 수천 년 동안 내려온 ‘역할’ 설정이 재해석되면서 폄하되어 왔던 요리에 대한 인식이 변화된 것이다. 특히 2015년 먹쿡방 열풍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남성 셰프들의 전면적인 등장이다. ‘요섹남’(요리를 섹시하게 하는 남자)이라는 용어가 인기를 끌 정도로 요리하는 남자는 대중문화의 핵심 키워드로 떠올랐고 <오 나의 귀신님>(TVN, 2015), <맨도롱 또똣>(MBC, 2015), <당신을 주문합니다>(SBS 플러스, 2015) 등의 인기 드라마에서도 셰프가 남자 주인공의 직업으로 등장하게 된다. ➍ 정치적인 측면에서 볼 때, 보수정권의 집권 하에 방송사들은 현실 비판적 인식을 둔화시키면서 풍요의 판타지를 생산해 내는 먹쿡방을 효과적으로 활용했다.[각주:8] 물론 시청자의 입장에서 볼 때, 고달픈 현실과 막막한 미래 때문에 받게 되는 스트레스나 상처를 먹쿡방을 통해 셀프 힐링하는 측면이 없진 않다. 하지만 먹쿡방을 조금만 주의 깊게 들여다보면, 발달된 촬영 기술을 통해 시청자들의 식욕을 불러일으키고 예능의 포맷을 적용해 정보와 재미를 제공하곤 있지만, 음식의 맥락과 의미에 대해서는 애써 함구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출연자들 또한 요리를 만들거나 먹으면서 연신 찬사와 행복감을 과장적으로 보여줄 뿐이다.

3. 물론 방송의 대세가 된 먹쿡방을 통해 시대진단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음식의 공공재적 측면을 간과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맛칼럼리스트인 황교익이 치킨을 예로 들면서 “치킨은 나보다 정부와 자본을 만족시키는 음식이다.”라고 한 말의 맥락을 되새김질 해 볼 필요가 있다.[각주:9] 또한 슬로푸드운동의 창시자인 카를로 페트리니(Carlo Petrini, 1949~)회장이 2010년 9월 방한 때, 음식은 농업의 문제이고 농업은 농촌의 문제이며 농촌은 문화의 문제라고 언급하면서 농업을 얘기하지 않은 음식 얘기는 모두 푸드 포르노라고 비판한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각주:10] 


  정리하자면 근래의 먹쿡방 열풍은 우리 사회의 ‘정서적 허기'(Sentimental Hunger)를 매개로 치유라는 담론이 상품화되고 산업적 이해관계와 맞아 떨어진 가운데 생성된 것이다.[각주:11] 게다가 그간 예능 프로그램의 큰 흐름이었던 야외 버라이어티 프로그램보다 70% 수준의 저렴한 제작비에 간접 광고(PPL)도 비교적 수월할 뿐만 아니라 시청률도 높은 효자상품이기에 방송사들이 지금의 먹쿡방 포맷을 쉽사리 포기하진 않을 듯하다. 그러나 먹쿡방의 흥행은 곧 우리 사회가 지독히 소외되어 있음을 알리는 병리적 신호이자 사회 모순의 변증적인 반작용이기도 하다. 따라서 지금은 삶에 대한 성찰과 함께 ‘철학이 있는 식탁’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때가 아닐까?[각주:12]


  1. 푸드 포르노는 영국의 저널리스트 로잘린 카워드(Rosalind Coward)가 1984년에 출간한『여성의 욕망』(Female Desire)에서 처음 사용하였다. 음식이나 이를 먹는 영상, 이른바 먹방이나 쿡방을 통해 자신의 욕구를 해소하는 일종의 대리만족을 일컫는 말로 타인의 식욕과 식탐을 관음한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신조어이다. [본문으로]
  2. 과거 <6시 내고향>(KBS1), (KBS2), <생활의 달인>(SBS) 등에서도 전국의 맛집과 유명 식당을 소개하는 프로그램들이 인기를 끌었지만 이들은 엄밀히 말해 프로그램을 구성하는 한 코너로서 주말의 여가나 문화생활을 위한 외식과 특정 지역에 대한 정보 제공의 성격이 강했다. 하지만 최근의 먹방과 쿡방은 음식으로 시작해서 음식으로 끝나는, 즉 음식에 관한, 음식을 위한, 음식에 의한 방송이라는 차원에서 이들과는 전혀 다른 방송 포맷이라 할 수 있다. 류웅재, “쿡방의 정치경제학 : 주체의 자기 통치의 관점에서”, 『문화과학』, (2015. 9) 161~162쪽 [본문으로]
  3. 통계청에 따르면 2015년 말 기준 1인 가구가 전체 가구 수의 25%에 달하는 506만 명으로 증가하였고 오는 2020년에 588만 명, 2030년에는 709만 명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김지연ㆍ최국현, “혼밥족님 식사하셨습니까?”, 세계일보 2015년 12월17일자에서 재인용 [본문으로]
  4. Buzz MetriX, “1인 가구, 나 혼자 산다”, Trend Letter 2014년 6월호 [본문으로]
  5. CNN은 한국에서 ‘먹는다는 것’이 지극히 사회적이고 공동체적 행위임을 지적한다. Frances Cha, "South Korea’s online trend : Paying to watch a pretty girl eat", CNN, Jan 29th, 2014. [본문으로]
  6. 이은주, “쿡방, 웰빙ㆍ다이어트에 지쳐 ‘진짜’ 행복 찾고 싶었다. : 쿡방에 열광하는 대한민국 … 그 속에 숨은 사회심리학”, 서울신문 2015년 7월11일자에서 재인용 [본문으로]
  7. The print edition Asia, "The food-show craze", The Economist, Jun 27th 2015. [본문으로]
  8. 최강민, “먹방 전성시대를 해부하다”, 『플랫폼』, (2015. 5) 36쪽 [본문으로]
  9. 황교익 맛칼럼리스트와의 대담, CBS 라디오 주말 시사자키 윤지나, 2015년 7월 5일자 방송 참조 [본문으로]
  10. 슬로푸드운동은 1989년 발표한 선언문에서 질 좋은 음식이 되려면 좋은 재료와 숙련된 기술로 만들고, 환경과 동물복지, 생물다양성, 건강까지 고려하며, 노동조건과 정당한 보수, 연대와 공감, 문화다양성 존중을 만족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김종덕, “현대 먹을거리의 문제점과 슬로푸드운동”, 『역사문화학회 학술대회 발표자료집』, (2009.6) 참조 [본문으로]
  11. 류웅재, “쿡방의 정치경제학 : 주체의 자기 통치의 관점에서”, 171쪽 [본문으로]
  12. 김경호, “요리하고 먹는 쿡방 전성시대, 푸드포르노 아닌 철학있는 식탁 만들기”, 국민일보 2015년 6월17일자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