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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예술산책

편집, 결합과 배치를 통해 영화에 새로운 창조성 부여

편집 - 결합과 배치를 통해 영화에 새로운 창조성 부여

 


<대열차강도> 1903년, 에드윈 포터(Edwin Porter)


1. 편집의 원리


  영화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들 중의 하나는 결합과 배치의 예술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특징들은 선택, 결합, 일치의 세 가지 과정을 통해 이루어지는 편집의 개념 속에 포함되어지는데, 먼저 여기서는 영화제작 과정을 통해 이러한 편집의 중요성을 정리해 보고자 한다.

  ① 먼저 완성된 시나리오를 각 행위의 단위들로 자른 후 다시 이것들을 분할하여 촬영의 단위(쇼트)로 만든다.
  ② 그리고는 실제 촬영에서 이 쇼트들을 여러 개의 테이크로 나누어 찍게 되는데 바로 이러한 테이크의 총체가 이른바 러쉬필름이다. 이때부터야 비로소 편집이 시작된다. 그러나 이러한 편집은 다시 3단계로 나뉘는데 ① 러쉬필름에서 필요한 부분을 선택하여 ② 일정한 차례로 결합한 후 ③ 각 쇼트에 주어질 정확한 길이의 결정과 쇼트들 사이의 시선 및 방향의 일치를 확인함으로써 이루어진다. 이 때 음향편집은 영상편집과 동시에 이루어질 수도 있고 영상편집이 완성된 후에 이루어질 수도 있다.

  위에서 보았듯이 편집의 대상은 - 좁은 의미로서 - 영화의 쇼트들이며, 편집을 통해서 각기 분리되었던 요소들은 일련의 영화적 총체성속에 포함되어진다. 그렇기에 어떤 면에서는 편집이란 곧 한 편의 영화를 만들기 위한 과정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마르셀 마르땡(Marcel Martin)은 "일정한 차례와 지속시간에 맞추어 쇼트들을 조직하는 작업"을 편집이라고 정의한다. 

  하지만 관습적으로 - 그리고 경험적으로 - 쇼트를 편집의 단위로서 언급하는 것은 일반 서술적 표상영화들 속에서 부분적으로는 가능할지는 몰라도 편집의 대상으로서 쇼트만을 언급한다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다.
  예를 들어 쇼트보다 우위의 개념으로서 ‘영화적 인용들’ 또한 하나의 편집의 대상일 수 있으며 더불어 편집의 방식에 따라서 - 특히 쇼트의 시각적 모수(母數)에 따라서 - 쇼트 내부에서도 편집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에이젠슈타인(S. M. Eisenstein)은 시나리오를 큰 서술단위(쇼트의 총체)로 분할할 것과 이를 다시 데꾸빠쥬[각주:1]와 몽따주의 두 차원에서 고려할 것을 제안한다.

  또한 음향과 더불어 생각할 때 편집이란 꼭 쇼트의 구분과 일치하는 형태로 가는 것도 아니다. 그렇기에 편집의 개념에 순서(인접하거나 연속성에서), 지속시간 외에도 병치(균일하거나 이질적인 요소들)의 과정을 포함되어야 한다. 그리할 때 편집의 확장된 개념을 다음과 같이 정의할 수 있다.

“편집이란, 영화의 시청각적 요소들을 서로 병치시키거나 서로 연속시키는 조직, 결합, 그리고 지속시간을 결정짓는 원리이다.”(오명 外, 66)


2. 편집의 기능


  2-1. 경험적 접근

  표현주의 전통의 창시자로서 죠르쥬 멜리에스(Georges Melies)는 영화 역사상 큰 영향을 미쳤지만 그의 영화들은 쇼트의 단순한 배열로 이루어져 있다. 그렇기에 엄밀한 의미에서 편집을 발견한 초기의 선구자로서는 - 오늘날 서부극의 효시로 불리우는 - <대열차 강도 The Great Train Robbery>(1903)를 만든 에드윈 포터(Edwin Porter)를 들 수 있다. 


Georges Melies & Edwin S. Porter & D.W. Griffith

  이러한 편집은 - 영화의 아버지로 불리우는 - 그리피스(D.W. Griffith)에게서 더욱 구체화되는데 그리피스는 편집기법에 있어 다음의 세 가지 기본유형을 개발했다.

  ① 연속커팅(cutting to continuity)
     - 사건의 모든 행위를 전부 그대로 묘사하지 않고도 행위의 연속성을 유지하려는 시도
  ② 고전적 커팅(classical cutting)
     - 단순한 물리적인 동기에서가 아니라 극적인 집중과 감정적 강조를 위해 고안된 기법
     → 그리피스는 공간적 통일성을 해체하며 그 공간의 구성요소들을 분석하고 미세한 부분들의 시퀸스에 우리의
         주의를 집중하도록 클로즈업을 사용한다.
  ③ 주제적 커팅(thematic cutting)
     - 현실적 시공간의 연속성을 무시하고 관념들 사이의 결합을 강조한 기법
     → 소련 영화감독들에게 큰 영향을 끼친다.

  이러한 편집의 1차적 기능은 바로 서술적 기능으로서 관객에게 허구적인 내용을 창조적으로 배열하여 하나의 드라마를 쉽고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게 만드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편집은 이러한 중심적 기능 - 서술적 기능 - 외에도 다른 여러 효과들을 발생시킨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표현적 편집이다. - 예) 프랑스 아방가르드 작품 - 표현적 편집이란 이미지를 충돌시켜 감정이나 사고를 표현하는, 즉 미학적 쇼크를 생산하는 것이다. 여하튼! 이러한 편집의 발견은 고정된 쇼트로부터 <카메라의 해방>이라는 중요한 미학적 효과를 가져왔다.

  2-2. 더욱 체계적인 서술

  편집은 일반적으로 두 개의 쇼트가 독립적으로 만들어낼 수 없는 특별한 효과를 만들어내는 작업이다. 그렇기에 편집하는 순간에 만들어지는 효과가 무엇이든지 간에 원칙적으로 편집은 그 성격상 어떤 의미나 감정 생산의 테크닉이라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편집은 항상 그 기능에 의해 정의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발라즈(B. Balazs)는 편집유형을 이데올로기적, 메타포적, 시적, 우의적, 지적, 운율적, 형식적, 주관적 편집으로 나누었고 푸도프킨(W. Pudowkin)은 대조, 병행, 유사, 동시성, 시도동기로 나누었다. 또한 에이젠슈타인은 운율편집, 리듬적 편집, 음계편집, 조화편집, 지적편집으로 나누었다. 여기서는 편집의 기능을 세 가지 유형으로 분리하여 간단히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① 통사론적 기능
     - 연결 또는 단절의 효과를 내기도 하고 교차의 효과를 내기도 한다. 특히 교차의 효과에는 동시성을 의미하는 
       교차편집과 서로 다른 두 개의 상황을 연결하는 평행편집이 있다.
  ② 의미론적 기능
     - 외연적 의미생산 → 시공간을 정확히 제시해 주는 것(예, 설정화면)
       내포적 의미생산 → 각기 이질적인 두 요소를 편집을 통해 서로 매끄럽게 연결시키는 것
  ③ 운율적 기능
     - 시청각적 속도와 관계된 시간적 리듬과 화면영역에 나타나는 다양한 요소들 - 명암, 선과 형태, 부피와 심도, 
       그리고 움직임과 정지 상태 등 - 의 분배로부터 생성되는 조형적 리듬이 있다.

3. 편집의 이데올로기


  영화의 역사상 편집에 대한 입장은 항상 두 가지 상반된 입장으로 나타났다. 하나는 편집을 영화에 있어 필수적인 다이나믹한 요소라고 주장하는 경향이며, 또 다른 하나는 편집 그 자체를 과소평가하면서 현실세계의 사실주의적인 재현이나 담화적 측면에서의 현실표상을 영화 매체의 가장 궁극적인 목표로서 보는 경향이다. 우리는 이 두 입장을 에이젠슈타인과 앙드레 바쟁(Andre Bazin)을 통해서 일별할 수 있다.

  3-1. 앙드레 바쟁과 <투명성>의 영화

  바쟁에게 있어 현실 자체는 신의 섭리의 실현이기에 완전한 것이며 모호한 것이다.
  따라서 인간은 거기에 개입하거나 변형, 혹은 해석을 가해서는 안된다. 그렇기에 바쟁은 영화가 예술의 이름으로 현실에 변형을 가하고 관객에게 의도된 해석을 가하는 것을 그 누구보다도 혐오하였다.

  바쟁에게 있어서 영화는 오직 현실의 시공간이 가지는 연속성, 통일성을 보존하고 그것을 그대로 드러내 주어야 하는 것이었다. 부언하자면 바쟁에게 있어 현실은 자체의 의미를 지닌 모호한 것이기에 영화에서 보여지는 ‘현실’ 또한 그러한 현실의 본질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바쟁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몽타주는 일정한 한도 내에서 밖엔 이용할 수가 없다. 그렇지 않으면 이런 영화에 의한 이야기의 존재성 그 자체를 침해할 위험이 있는 것이다. … 한 사건의 본질이 행위(액션)의 둘, 혹은 그 이상의 요인의 동시적 제시를 필요로 할 때는 몽타주는 금지된다.” 앙드레 바쟁, 『영화란 무엇인가』, 박상규 譯, (서울: 시각과 언어, 1998), 79-82.

  이러한 바쟁의 스타일은 곧 현실을 - 롱테이크를 동반한 포커스를 통해 - 변형 없이 투명하게 드러냄으로써 그 완결성과 모호성을 보존해야 한다는데 그 특징이 있다.(투명성의 원리) 그러나 현실을 있는 그대로 제시해야 한다는 신념은 영화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철저히 은폐할 것을 요구하게 되며 이는 사실상 관객을 무비판적인 수동적 위치로 전락시키는 고도의 기만적 과정이기에 비판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 


  3-2. 세르게이 에이젠슈타인과 영화 변증법

  바쟁과는 달리 에이젠슈타인에게 있어 현실이란 사람들이 부여하는 의미와 그것에 대한 해석 이외에는 그 어떠한 가치도 없다. 그렇기에 그에게 있어 영화란 곧 이러한 현실을 해석하는 하나의 수단일 뿐이다.
  다시 말해 영화는 현실에 간섭하지 않고서는 현실을 재생산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이러한 영화는 오직 일정한 이데올로기적 - 변증법적 유물론과 역사적 유물론 - 입장으로서만 담화의 진실성과 현실을 반영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에이젠슈타인은 먼저 영화예술의 기초로서 몽타주를 주장한다. 이러한 그의 몽타주를 흔히 ‘충돌(Conflict) 몽타주’라 하는데 이는 독립적인 호소력을 지닌 단편과 단편이 서로 만나 변증법적으로 충돌함으로써 관객의 ‘이미지 연상적 사고’를 불러일으켜 새로운 제3의 개념을 발생시킨다는 것이다.(충돌→비약)
  에이젠슈타인은 이러한 충돌의 유형을 “영화형식의 드라마트루기”(1929년)에서 10가지로 나누어 기술한다.(오몽 外, 90 재인용) 

  ① 그래픽적 충돌, ② 표면의 충돌, ③ 양감의 충돌, ④ 공간적 충돌, ⑤ 조명적인 충돌, ⑥ 리듬의 충돌, ⑦ 질료(재질)와 화면구성 사이의 충돌(카메라 시점에 의한 공간적 왜곡), ⑧ 질료와 그 공간성 사이의 충돌, ⑨ 사건의 전개와 시간성 사이의 충돌(빨라짐과 늦어짐), ⑩ 광학복합체의 총체와 다른 영역 사이의 충돌

  그러면서 에이젠슈타인은 영화적 단위로서 부분’을 언급한다. 이는 흔히 쇼트와 혼동되기도 하지만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그 개념이 전혀 다르다. 왜냐하면 부분은 표현의 단위가 아닌‘담화의 단위’이기 때문이다. 더불어 이 개념은 매우 다의적으로 해석되기에 ① 통합체적 연쇄관계의 한 부분으로도, ② 영화의 이미지로서 다양한 영화적 표현들과 맞물려 수많은 물질적 요소들로 나눠지기도 한다. ③ 또한 대상물과의 특정한 관계유형을 포함함으로써 현실 - 카메라 앞에서 이미 조직화되어 있는 현실 - 을 전달하는 역할도 한다.

  또한 에이젠슈타인은 다양한 청각적 요소들인 말, 소음, 음악을 영상과 동등하게 사용함으로써 편집의 개념을 확장시켰고 관객과의 관계에서 에이젠슈타인은 조건반사론에 힘입어 인간에게서 나타나는 반응들을 영화를 통해 조절할 수 있다고 봄으로써 관객이 한 영화작품에 정감적이면서도 지적으로 몰입할 수 있는 ‘영화적 황홀’이라는 개념을 그는 옹호하게 된다.

  정리하자면 바쟁은 그 자체로서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현실의 “객관적”이고 충실한 재생산을 주장하였다면 에이젠슈타인은 영화를 통해 현실을 열정적이고 적극적으로 재창조해야 한다고 보았던 것이다. 이는 곧 <현실을 믿는 사람>과 <영상을 믿는 사람>간의 줄기차게 있어왔던 주요한 논쟁점이며 어떤 면에서는 헤겔의 ‘현실은 이상적인 것이어야 하며 이상적인 것은 현실이어야 한다’는 담론에 있어 어디에 중점을 두느냐와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오몽 外 3명, 『영화학 어떻게 할 것인가』, (서울: 열린책들, 1996)를 중심으로

  1. 불어로 decoupage는 ‘조각들을 자른다’는 동사 decouper에서 파생되었는데 노엘 버치(Noel Burch)는 데꾸빠쥬를 세가지 의미로 분류한다. 첫째로는 대본의 최종형태를 의미하고 둘째로는 확장된 의미로서 내러티브의 흐름을 ‘영화화 되기 이전의’ 쇼트와 시퀸스로 분절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곧 ‘shooting script'에 해당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데꾸빠쥬는 촬영과정에서 선별된 공간적 단편들이 시간적 단편들과 만날 때 생기는 결과를 말한다. Noel Burch, Theory of Film Practice, Princeton University Press, 3~4. 바쟁은 종종 데꾸빠쥬를 ‘하나의 생각을 영화적 표현으로 바꾸는 전체적인 과정’을 가리키는 추상적인 의미로 사용한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