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콤 글래드웰(Malcolm Gladwell)의 책, 『그 개는 무엇을 보았나』에는 1979년 3월 미국 스리마일 섬(Three mile Island)에서 일어난 핵 사고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스리마일 섬 사고는 냉각수를 거르는 거대한 필터가 막히면서 시작됐다. 사실 이 문제는 드물게 발생하는 것도, 심각한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필터가 막히면서 습기가 공조 시스템으로 새어 들어가 2개의 밸브를 작동시키는 바람에 냉각수가 차단되면서 문제가 커지고 말았다. 당시 스리마일 섬 발전소에는 이러한 상황에 대비한 비상 냉각 시스템이 있었지만 그날은 웬일인지 비상 냉각 시스템을 작동시키는 밸브가 열리지 않았다. 더구나 밸브가 닫혔음을 알리는 표시등이 그 위에 있던 스위치에 달린 수리 기록표에 가려져 있었다. 그래도 세 번째 안전장치인 압력 조절 밸브가 작동했다면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공교롭게도 압력 조절 밸브는 고장이 나 있었다. 닫혔어야 할 압력 조절 밸브는 계속 열려 있었고 그 사실을 알리는 계기마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엔지니어들이 상황을 파악했을 때는 이미 원자로가 융해되기 일보직전이었다. 이처럼 스리마일 섬 사고는 다섯 가지 이상의 문제가 겹치면서 일어났다.” 1
그 날 스리마일 섬 핵발전소에서 발생한 사고는 누가 봐도 정말 억세게 운이 없었던 경우다. 위에 언급된 일들이 하나씩 일어났다면 어렵지 않게 해결될 수 있었던 일들이 ‘우연히’ 여러 개가 겹치면서 예상치 못한 상호작용을 통해 거대한 문제를 일으켰던 것이다.
1986년 1월 28일, 발사 후 73초 만에 산산조각나면서 승무원 7명이 전원 사망한 챌린저 호 폭발 사고의 원인은 우주 왕복선을 발사할 때 추진력을 더해주는 로켓 부스터의 틈새를 막는 고무 부품인 오링(O-ring)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해 일어난 재난이다. 하지만 사회학자 다이앤 본(Diane Vaughan)은 『챌린저 호 발사 결정』(The Challenger Launch Decision : Risky Technology, Culture and Deviance at NASA)에서 또 다른 진실에 대해 지적한다.
“NASA와 시어콜의 엔지니어들은 우주왕복선이 처음 발사되기 훨씬 전인 1977년부터 오링의 틈새 문제를 알고 있었다. 그들은 우주왕복선 발사 시 생기는 오링 틈새의 크기를 알아내기 위해 지속적인 실험을 진행했고, 실험 결과의 불확실성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를 놓고 힘든 협상을 거쳤다. 그 결과 그들은 오링의 틈새와 그로부터 빚어질 수 있는 손상이 ‘수용 가능한 위험’이라고 보고 우주왕복선의 발사를 추진했다. 그리고 1981년부터 10여 차례에 걸쳐 우주왕복선을 성공적으로 발사하는 과정에서 오링이 손상된 사례가 때때로 발견되긴 했지만, 그러한 오링의 손상은 대체로 예측했던 방식으로 나타났고 우주왕복선의 실패로 이어지지는 않았기 때문에 이는 여전히 ‘수용 가능한 위험’ 내지 ‘허용수준 이내의 부식’으로 간주되어 발사는 계속되었다.” 2
발사 당일 아침, 몇몇 엔지니어들이 오링 손상의 문제를 제기하였지만, 계속된 발사 지연에 대한 부담감도 있었고, 과거에 그보다 더 큰 손상이 있었을 때에도 우주 왕복선을 성공적으로 발사시켰던 경험을 지닌 나사의 상부와 제조사 모튼 시어콜(Morton Thiokol)측의 경영진은 그들의 경험에 비추어 그러한 의견을 묵살하고 발사를 강행했던 것이다.
사실 우주왕복선과 관련하여 나사에 의해 정리된 ‘수용 가능한 위험’(Acceptable Risk) 목록만도 6권의 분량에 이른다고 하니 이들의 판단은 나름의 ‘경험적 합리성’을 띈 결정이라 볼 수 있다. 다이앤 본은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챌린저 호 발사에 이르는 결정은 규칙에 기반을 둔 것이었다. 그런데 과거에 단 한 번도 잘못된 적 없던 문화, 규칙, 절차, 규범이 이번에 문제를 일으키고 말았다. 챌린저 호 폭발 사고는 간부들이 비도덕적인 계산을 하기 위해 규칙을 어겨서 일어난 것이 아니라 규칙을 따른 끝에 일어난 것이었다.” 3
그러면 후쿠시마(Fukushima) 핵발전소 사고원인은 무엇일까? 일본 정부와 도쿄전력은 역사상 가장 강력했던 지진과 거대한 쓰나미의 조합으로 인해 발생된 재난이라고 언급하였다. 도쿄전력에 의하면, 진도 9.0의 대지진과 함께 실재 후쿠시마에 들이닥친 파도의 높이는 평소에는 상상하기도 힘든 14~15m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도쿄전력의 마사타카 시미즈 대표 또한 ‘우리가 경험해 본 적 없는 자연의 거대한 힘’이라는 표현으로 자국 국민에게 사과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그 이면을 살펴보자.
1995년 일본 자국 내에서 일어난 한신 대지진 참사와 2004년에 발생한 - 인도네시아와 인근 12개 국가를 덮친 - 쓰나미는 55기의 핵발전소를 가진 일본에 경각심을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일본의 권위 있는 지진학자, 이시바시 가쓰히코는 1923년 관동대지진 이후 7~80년 동안 지속된 ‘평온기’가 1995년 한신대지진 이후 다시 ‘활동기’로 접어들었다고 지적하면서 바닷가에 핵발전소를 세워 가동하는 것은 자살행위라고 주장하였다. 뿐만 아니라 독립 저술가 히로세 다카시 또한 2010년에 발행한 그의 책, 『원자로 시한폭탄』에서 조만간 일본의 핵발전소 중에서 대형사고가 터질 것을 예감하였다.
하지만 도쿄전력은 후쿠시마 핵발전소의 수명이 다하는 50년간 6m 이상의 해일이 일어날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다는 ‘경제적 판단' 하에 방재대책을 수정하지 않았다. 결국 이러한 도쿄전력의 안일한 태도가 평소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자연의 대재앙과 맞물려 후쿠시마 참사로 이어졌다.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가 터지자 청와대까지 나서서 "국내의 핵발전소는 안전하다"고 발표하였다. 국내의 핵발전소는 일본보다 안전장치를 훨씬 더 많이 해놓았기 때문에 진도 6.5의 지진이 나도 끄떡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스리마일 섬 사고, 챌린저호 사고, 그리고 후쿠시마 사고를 살펴보면 이런 호언장담이 얼마나 의미 없는 것인지 알 수 있다.
대형 사고는 인간의 실수에서 시작되기도 하지만 평소에는 통제가 가능했던 사소한 문제들의 상호작용(스리마일 섬 사고), 평소에는 위협이 아니었던 귀찮은 문제들(챌린저 호 사고), 평소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잠재적 문제들(후쿠시마 사고)에서 비롯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이러한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발생할 수도 있다.
그렇기에 이러한 참사가 다른 곳에서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누구도 할 수 없다. 특히 미국(104기), 프랑스(58기), 일본(55기), 러시아(32기), 한국(21기) 순으로 이어지는 핵발전소 보유 순위로 볼 때 - 이미 미국(스리마일, 1979년)과 러시아(체르노빌, 1986년), 그리고 일본(후쿠시마, 2011년)에서는 핵사고가 발생하였기 때문에 - 다음은 확률적으로 프랑스와 한국 순서이다. 게다가 세계 최대 핵발전소 밀집 지역인 울진의 경우, 한국 기상관측사상 10대 지진 중 2위와 8위가 이곳에서 발생되었다고 한다. 한국에서, 그것도 울진에서 진도 7 이상의 지진이 나지 않으리라는 보장을 누가 할 수 있단 말인가?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