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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

희망

 

 

  가령 말이야, 쇠로 밀폐된 방이 있다고 하세. 창문은 하나도 없고 도무지 부술 수도 없어. 그 속에는 많은 사람들이 깊이 잠들어 있네. 그러니 머지않아 모두가 질식해 죽어버리겠지. 허나 혼수상태에서 그대로 죽음으로 옮겨가는 거니까 죽음의 슬픔은 느끼지 못할거야. 그런데 지금 자네가 큰 소리를 질러 그 가운데 비교적 의식이 뚜렷한 몇 사람을 깨워서는 살아날 가망도 없는 이 소수의 불행한 사람들에게 임종의 괴로움을 겪게 한다면 자네는 그들에게 미안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몇 사람이 깨어났다고 한다면 그 쇠로 된 방을 부술 희망이 절대로 없다고는 할 수 없지 않는가?
  루쉰 『외침』 <머릿말> 중에서...


  루쉰은 『희망』에서 "절망은 허망(虛忘)이다. 바로 희망이 그러한 것처럼!" 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과연 루쉰에게 있어 "희망"이란 무엇일까? 분명한 것은 루쉰에게 있어 "희망"이란 - 역설적이게도 - "손쉽게 희망하지 않는 것"이다. 물론 손쉽게 절망해서도 안된다. 왜냐하면 그 모든 것이 "허망"이기 때문이다.
  루쉰에게 있어 현실을 "그대로" 직시하는 것이 바로 "희망"이다. 그래서 루쉰은 『외침』 <머릿말>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물론 내 나름대로 확신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도 희망에 대해 말한다면 희망이란 말살시킬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희망은 미래에 속한 것이므로, 설사 내가 그런 건 절대로 없다고 주장한다고 해도 그의 주장을 꺾을 수는 없을 터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결국 나는 글을 쓰겠다고 대답하였다."


  우리는 우리가 처한 현실을 정직하게 대면한 이후에야 우리는 희망을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인간은 희망이 있기 때문에 걸어가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걸어가는 이상 희망이 없다고 단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2008년 4월 1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