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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대토템』에서 『오래된 미래』를 잇는 공존의 지혜를 엿보다.

『늑대토템』에서 『오래된 미래』를 잇는 공존의 지혜를 엿보다.


  인간은 언제나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는 역사적 존재이다. 따라서 인간의 자기이해(self-knowledge) 또한 - 역사적 존재로서 - 자기가 살아가고 있는 가족이나 사회나 국가 속에서 자기 자신을 이해할 수밖에 없다. 가다머(H. G. Gadamer)는 이를 ‘영향사 의식’(historically effected consciousness)이라고 일컫는다.[각주:1]  

  1946년 베이징 태생인 저자 장룽(姜戎)은 문화대혁명이 터진 이듬해인 1967년, 21세의 나이로 내몽골 변경의 올론초원으로 하방하여 11년간 유목생활을 경험하게 된다. 2004년 출간된 『늑대토템』(원제: 浪圖騰)은 한족(漢族)의 입장에서 유목생활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자전적 소설이다.

  먼저 저자의 영향사 의식을 간략히 분석해 보면 사회주의의 세례를 받은 그의 사상에 유목생활에서의 경험이 덧붙여진 걸 발견할 수 있다. 그래서 저자는 마르크스의 역사발전단계를 원용하여 민족성의 발전단계를 고대 ‘문명화된 양’에서 현대의‘문명화된 늑대’로 발전한 후, 개방적이고 자유민주적인 ‘문명인’의 단계로 나아간다고 보고 있다.(『늑대토템 2』, 557쪽)

  저자 자신은 『늑대토템』에서 30년 가까이 관찰하고 연구한 주요 목적이 낙후한 중국병의 근원을 찾고, 중국의 출로를 모색하는 거라고 천명한다.(『늑대토템 2』, 564쪽) 이어 그는 그 중국병의 뿌리가 농경과 농경문화의 성격에 있다고 결론 내린다.(『늑대토템 2』, 463쪽)
  저자는 이러한 분석을 바탕으로 새롭게 중국의 역사를 재조명한다. 여기서 그는 유학(儒學)을 중심으로 한 중국의 농경문화를 비판하면서 서양문명에 의해 무너진 한족의 문명(중화문명)을 다시 부흥시키기 위해서는 그 옛날, 전 세계를 지배했던 몽골족의 유목문명을 수혈 받아 중화민족의 강인함을 되찾아야 한다고 역설한다.

  “아직까지도 중화민족은 자기 민족의 운명을 스스로 만들어나갈 단계까지 발전하지 못하고 있어. 역사계의 혁명, 당대 중국의 혁명은 바로 늑대토템 정신을 통해 농경성을 개혁하고 유가가 잘못 이끌어온 중화를 바로잡는데 그 목표를 두어야 하는 거야.”(『늑대토템 2』, 556쪽)

  이러한 그의 사상은 분명 논쟁의 중심이 되기에 충분한 여지를 지니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호평을 받는 이유는 내몽골 변방의 올론 초원으로 하방한 북경의 지식 청년, 천전을 통해 초원에서 유목민이 자연과 어떻게 공존하며 살아가는지, 바오순궤이로 상징되는 - “합리성”과 “실용주의”로 포장된 - 인간의 욕망이 초원의 자연 생태계를 어떻게 파괴해 나가는지 초원의 늑대를 매개로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천전을 통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초원민족이 지키려는 것은 큰 생명체다. 그래서 그들은 초원과 자연의 생명이 사람의 생명보다 더 소중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농경민족이 지키고자 하는 것은 작은 생명체이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사람의 목숨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큰 생명체가 사라지면 작은 생명체도 전부 죽게 된다.”(『늑대토템 1』, 88쪽)

  11년간의 유목생활을 직접 경험한 저자가 20여년의 세월을 소요한 끝에 비로소 완성한 『늑대토템』은 평론가 멍판화(孟繁華)가 지적했듯이 ‘학식과 문학능력이 기묘하게 결합된 걸작’이라 평할 수 있다. 

  녹록치 않은 분량의 장편소설이지만 책을 한장 한장 넘기는 순간, 늑대의 생명력과 광활한 초원의 숨소리가 살아 숨 쉬는 듯 들려온다. 마지막 책장을 덮을 때에는 애정 어린 목소리로 “늑대야, 늑대야 밥 먹자.”라고 부르던 천전의 목소리가 아련히 귓가를 울린다.

  ※ 2007년, 『늑대토템』은 아시아의 부커상이라 불리는 '맨 아시아 문학상'(Man Asian Literary Prize)의 제1회 수상작으로 선정되는 영광을 안았다.

  1. H.G.Gadamer, Truth and Method., trans. William Glen-Doepel. (London: Sheed and Ward Ltd, 1979), 267~269.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