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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넓히기

핵 - 흰코리라는 딜레마의 허구

핵 - 흰코끼라는 딜레마의 허구 


  스리마일(1979년)과 체르노빌(1986년) 핵사고로 궁지에 몰려있던 핵산업계가 20세기 말 범지구적 위기로 대두된 지구온난화 문제를 디딤돌 삼아 다시금 재기를 꾀하였다. 그 후 핵 추진세력은 화석연료에 비해 핵 발전이 ‘청정에너지’일뿐만 아니라 저렴한 전기를 공급하며 심지어 안전하다고 주장하면서 막대한 돈을 투입하여 국민들을 세뇌시키고 있다.

  이들의 말대로 핵 발전 그 자체는 이산화탄소를 내뿜지 않는다 하더라도 핵 발전이 성립하려면 최소한 거대한 발전소를 건설, 운영해야 하고 우라늄을 채굴, 운반, 농축해야 하며, 핵폐기물(핵쓰레기)을 처리해야 하고 최종적으로는 수명이 다한 원자로를 폐쇄해야 한다. 이 모든 과정에서 소모될 막대한 화석연료를 고려하면 핵 발전이 청정에너지를 생산한다는 것은 자가당착일 뿐이다.

  특히 ‘죽음의 재’로 불리는 핵폐기물 처리에 있어 고준위 핵폐기물은 말할 것도 없고, 저준위 핵폐기물조차 합리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핵폐기물에서 나오는 방사능을 소멸시킬 때까지 수십만 년이라는 기간 동안 안전하게 보관할 장소와 방법이 지구상에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반핵운동가 다카기 진자부로는 핵발전소를 ‘화장실 없는 맨션아파트’라고 언급한다.

  더불어 핵발전소의 계획, 건설, 운용, 관리, 폐기에 투입되는 총체적 비용은 - 오염 및 사고, 그리고 보험 경비를 포함하지 않고서도 - 여타 다른 방법으로 얻어지는 전기의 원가보다 훨씬 더 높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핵발전소가 활발하게 건설되는 것은 정부의 보조금 때문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종국에 납세자의 부담으로 귀결된다.

  안전에 대해서도 언급해 보자. 1986년 4월, 핵발전소 사고 최고 등급인 ‘대형사고’ 7등급[각주:1]을 기록한 체르노빌(Chernobyl) 핵발전소 폭발은 수많은 인명을 앗아갔을 뿐만 아니라 25년이 지난 지금도 사고현장의 방사능 노출은 ‘평균치’보다 700배가 높아 반경 30km 이내에는 여전히 사람의 출입이 통제되고 있고, 이웃 나라 벨로루스에서도 서울 면적의 10배에 해당하는 6,000㎢가 출입통제구역으로 지정되어 있다. 그린피스는 체르노빌 사고로 인한 사망자수가 약 10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2011년, 또다시 ‘대형사고’ 7등급의 핵 사고가 후쿠시마에서 터졌다. 후쿠시마의 원자로에 비해 규모가 작은 원자로 1기가 폭발했던 체르노빌의 후유증이 이러할진대 원자로 4기가 망가진 후쿠시마 핵발전소는 일본을 넘어 인류에게 어떠한 재앙을 가져다줄지 예측 자체가 불가능할 정도이다.

  양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핵 발전은 전력생산 방식 중에서도 가장 값비싸고, 가장 위험하며, 가장 비효율적인 방식이라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프랑스와 한국을 비롯한 많은 나라들은 여전히 핵 발전을 고집하고 있다. 과연 그들의 말대로 대안이 없기 때문일까? 핵 산업에 지원되는 정부 보조금을 대안에너지 쪽으로 옮기려는 정부의 의지만 있다면 핵 발전 외에도 부족한 에너지 수요를 충족시켜 나갈 수 있는 방법은 분명히 있다. 그런데도 핵 발전을 포기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헬렌 칼디코트(Helen Caldicott)는 『원자력은 아니다』에서 핵 발전이 핵무기 확산에 일조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정욱식 또한 그의 책, 『글로벌 아마겟돈 - 핵무기와 NPT』에서 핵 발전은 근본적으로 이중용도로 쓰이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다시 말해 핵발전소는 전력 생산 이전에 기본적으로 핵폭탄 원료를 생산하기 때문에 모든 핵발전소가 잠재적인 핵폭탄 제조공장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장정일은 핵발전소와 핵무기는 등을 맞대고 태어난 샴쌍둥이라고 말한다. 결국 국가가 핵 발전을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는 정치적 목적 때문이다.

  하지만 핵발전소가 존재하는 한 우리는 시한폭탄을 안고 살아가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앞에서도 지적하였듯이 어떤 사고가 어디서 터질지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예일대의 찰스 페로(Charles Perrow)가 지적하듯, 첨단부품의 복잡성을 감안할 때 사소한 이상 조합이 파국을 초래할 가능성을 회피하기란 사실상 거의 불가능하다. 뿐만 아니라 지구온난화로 인한 이상기후로 인해 어떠한 형태의 자연적 재해가 들이 닫칠지는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다. 

  핵 발전은 인류와 공존할 수 없는 기술이다. 인간의 편익을 도모하기 위해 감내해야 할 대가가 바로 인류사회의 종식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미 지난 수십 년간 수많은 핵실험과 핵사고 등으로 인해 이미 지구는 방사능으로 오염되어 왔다.[각주:2]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번 후쿠시마 사고를 계기로 핵 발전에 대한 회의론이 급부상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미 일본이 울며 겨자 먹기로 결국 핵 발전 포기를 선언했고, 독일은 10년 안에 자국의 모든 핵발전소를 단계적으로 폐쇄할 것이라고 밝혔다. 스위스 또한 2034년까지 단계적 핵발전소 폐기를, 이탈리아는 국민투표를 통해 핵 발전 반대를, 핀란드는 핵발전소 건설 중단을 선언하였다.

  한국 정부도 후쿠시마 핵 사고를 반면교사로 삼아 핵 발전 없는 사회를 지향하기 위한 단계적 에너지 전환 시나리오를 만들어야 한다. 전력이 부족해도 인간다운 삶은 얼마든지 지속될 수 있다. 시인 브레히트(Bertolt Brecht)가 말했듯이 이런 상황에서 아직도 웃고 있는 사람은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1. INES(International Nuclear Event Scale)는 국제원자력기구(IAEA)에서 1990년에 도입한 원자력발전소 사고 평가기준을 일컫는 것으로, 사고수준에 따라 0~7까지 8단계로 분류된다. 0등급은 안전상 중요하지 않는 상황, 1등급은 일탈, 2등급은 이상 상황, 3등급은 심각한 이상 상황, 4등급은 시설 밖으로 큰 위험이 없는 사고, 5등급은 시설 밖으로 위험이 번지는 사고(1979년 스리마일 사고), 6등급은 심각한 사고, 7등급은 중대한 사고(1986년 체르노빌, 2011년 후쿠시마 사고)로 나뉜다. [본문으로]
  2. 물론 정부와 핵 산업 관련자들은 언제나 방사능 피해를 축소하고 은폐한다. 그들은 항상 방사선 허용기준치를 들먹이며 저농도 방사능으로는 건강에 피해가 없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허용기준치 자체가 국제원자력기구(IAEA)나 국제원자력방호협회(ICRP) 기준치를 참고해서 각 국가들이 정하는 수치일 뿐이다. 한 예로 체르노빌 사고 당시, 몰려드는 환자들을 감당할 수 없어 피폭 허용한계치를 갑자기 다섯 배로 늘리기도 하였다. 이러한 조치는 후쿠시마 사고에서도 행해졌다. 세계보건기구(WHO)에 의하면 의학적으로 안전한 기준치는 0밀리시버트라고 한다. 이는 곧 아무리 미량일지라도 방사선 피폭은 인체에 유해한 것이라는 의학적 결론이다. 그래서 김종철은 허용기준치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핵 산업을 보호하려는 목적으로 어용학자들에 의해서 자의적으로 만들어진 수치일 뿐이라고 말한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