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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예술산책

오스왈도 과야사민 특별기획전 스케치

  에콰도르의 국민화가 오스왈도 과야사민(Oswaldo Guayasamín, 1919~1999)의 특별기획전은 20195, 국무총리였던 이낙연 대표가 에콰도르 공식 방문 중에 한국 전시를 희망한 것이 계기가 되어 성사되었다. 유화. 소묘, 수채화 원작, 영상 자료 등 총 89점이 소개된 이번 전시회는 서울 은평구 소재 사비나미술관에서 2020년 12월 19일부터 21년 2월 2일까지 열렸다.

사비나미술관

  과야사민의 작품은 크게 세 시기로 나눠볼 수 있다. 먼저 1940년대와 1950년대의 <애도의 길>(El Camino del Llanto)1960년대부터 1980년대 중반까지의 <분노의 시대>(La Edad de la Ira), 그리고 마지막으로 1980년대 중후반과 1990년대의 <온유의 시대>(La Ternura)가 바로 그것이다. 물론 시기의 경계가 <분노의 시대><온유의 시대>에서 중첩되는 경향이 없진 않다.

오스왈도 과야사민 도록

  과야사민의 작품은 사비나미술관 2층과 3층에 전시되어 있는데, 전시 공간의 특성상 2층에는 <분노의 시대>(1960년대~1980년대 중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쿠바 혁명(1959) 이후, 정치적 색채가 더욱 짙게 묻어난 이 시기의 과야사민은 앙상하고 비틀린 인체와 공포에 질린 얼굴을 어둡게 채색하면서 피의 강이라고 명명한 20세기, 시대의 폭력성과 잔혹함을 고발하고 있다과야사민은 그의 저서 내가 살아내야 했던 시대 (El tiempo que me ha tocado vivir, 1988)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의 그림은 사람들의 마음을 상하게 하고, 긁고, 때리기 위해, 인간이 인간을 향해 무엇을 저지르는지 보여주기 위해 존재한다.”

  과야사민의 <분노의 시대> 작품 중 눈에 띄는 몇몇 작품들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눈물 흘리는 여인들 Ⅰ - Ⅶ>(Mujeres Llorando, 145cm×75cm, 1963~1965)

  스페인 내전(1936~1939) 이후, 남겨진 여인들의 고통과 불행에 주목한 과야사민은 검은 상복을 입은 여인의 모습을 7개의 연작으로 남기게 된다. 7개 작품 수는 일주일을 상징하는데, 이는 스페인 여인의 눈물과 고통이 일주일 내내 매일매일 반복되고 있음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짙은 회색 바탕은 이들의 암울한 현실을 나타내고 있고, 슬픔과 고통의 순간을 포착한 얼굴 표정과 상대적으로 크고 거칠게 묘사된 손에서 과야사민 특유의 회화적 표현능력을 느낄 수 있다.

<기다림 Ⅱ - Ⅷ>(La Espera Ⅱ - Ⅷ , 200cm×100cm, 1968~1969)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를 직접 방문한 과야사민이 그때의 충격을 11개의 작품으로 묘사했다. 커다란 직사각형 검은색 바탕은 벗어날 수 없는 죽음을 의미하며, 공포에 질린 얼굴과 앙상한 전신(全身)은 강제수용소에 갇혀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죽음의 날을 무기력하게 기다리고 있는 유대인의 비애를 그리고 있다. 이번 특별전에는 11개의 작품 중 2번에서 8번까지 7개가 전시되어 있다.

<펜타곤에서의 회의 Ⅰ - Ⅴ>(Reunión en el Pentágono Ⅰ - Ⅴ , 179cm×179cm, 1970)

  캐리커처에 기반한 군인의 초상을 대형 정사각형 캔버스에 한 사람씩 5명을 형상화했다. <펜타곤에서의 회의> 연작은 중남미를 자신들의 뒷마당쯤으로 여기는 오만한 미군 수뇌부의 심리적 초상화로, 음흉하고 잔악하게 묘사된 다섯 명의 군인은 지명수배 포스터처럼 묘사되어 20세기 광기의 시대에 탐욕과 폭력을 상징하고 있다. 미국방부의 본거지인 펜타곤의 한 밀실에서 이들은 어떤 음모를 꾸미고 있는 것일까? (미국에 대한 그의 비판은 1988년 에콰도르 의회 건물에 그린 벽화에서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이 벽화에는 CIA라는 단어가 새겨진 나치 헬멧 이미지가 그려져 있다.)

<산의 머리>(Cabeza de la Montaña, 95cm×134cm, 1974)

  에콰도르의 수도인 키토(Quito)는 피친차(Pichincha, 4,784m) 산봉우리에 둘러싸인 분지 지역이다. 과야사민은 <산의 머리>에서 수탈당한 중남미의 울분을 키토의 활화산인 피친차산과 결합해 표현했다. 지금이라도 곧 폭발할 것만 같은 강력한 저항의 에너지가 느껴지지 않는가?

<네이팜의 머리>(Cabeza de Naplam, 122cm×122cm, 1976)

  베트남 전쟁(1955~1875) 당시 악명 높은 살상 무기인 네이팜탄에 노출되어 고통받고 있는 인간의 모습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뭉크(Edvard Munch)<절규>(The Scream, 1893)가 클로즈업 되어 떠오르기도 하는 이 작품은 살가죽이 벗겨지는 고통 속 인물을 통해 전쟁의 잔인한 참상과 인간의 잔혹한 폭력성을 고발하고 있다. (2차 세계대전 막바지에 처음 사용되었지만 한국 전쟁과 베트남 전쟁에서 훨씬 많이 사용되면서 악명을 얻은 네이팜탄은 베트남 전쟁 동안 약 40만톤이 사용되었다고 한다. 미군의 지원 아래, 중남미에서도 1965년 페루 군대가, 1968년에는 멕시코 정부가 반군을 향해 사용하기도 했다.)

  이 외에도 수탈당한 중남미의 역사적 질곡과 폭력의 20세기를 '살아내야만 했던' 이들의 고통을 표현한 <절박한 사람들->(-, 1966)<절규->(El GritoⅠ-, 1983)도 놓치지 말아야 할 작품들이다.

<절박한 사람들 Ⅰ - Ⅲ>( Ⅰ - Ⅲ , 100cm×200cm, 1966)
<절규 Ⅰ - Ⅲ>(El Grito Ⅰ , Ⅲ , 130cm×89cm,  Ⅱ , 105cm×175cm, 1983)

  3층으로 올라가면 오스왈도 과야사민의 생애 연대기가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다. (참조 : 과야사민의 생애 연대기

오스왈도 과야사민 연보

  이어 <온유의 시대>(1980년대 중후반~1990년대) 작품들이 눈에 들어온다. 노년기에 접어든 과야사민의 작품세계는 폭력과 억압에 저항하던 사회적 메시지가 차츰 사라지면서 인간 본연의 내면으로 침잠하는 경향을 띠고 있다. <분노의 시대>에서 보여줬던 강렬한 색채와 거친 붓질도 한층 부드러워지고 따뜻해졌다. 과야사민은 <온유의 시대> 시리즈를 자신의 어머니와 중남미 여성들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 기획했다. 그렇기에 <온유의 시대> 중심에는 '어머니'가 자리매김하고 있다.

  과야사민은 어릴 때 돌아가신 자신의 어머니를 다음과 같이 회상한다. “어머니는 제가 영위하는 화가로서의 삶을 주셨습니다. 그녀는 제 인생에 영원한 시()로 존재합니다. 제가 살아있는 동안 언제나 어머니를 기억할 것입니다.”

<어머니의 초상>(Retrato Mamá Lolita, 65cm×51cm, 1937)

  하지만 <온유의 시대>는 '어머니'를 넘어 생명에 대한 존중과 보편적 인간에 대한 사랑과 연민, 희망으로 확장되면서 구현된다. 3층에 전시된 <온유의 시대>에서 눈여겨볼 작품으로는 <어머니와 아이>(Madre y Niño, 1982)<두 머리>(Dos Cabezas, 1986~1987), 그리고 <온유>(La Ternura, 1989)<연인들>(Los Amantes, 1989)를 꼽을 수 있다

<어머니와 아이>(Madre y Niño, 105cm×176cm, 1982)
<두 머리>(Dos Cabezas, 100cm×100cm, 1986~1987)
<온유>(La Ternura, 135cm×100cm, 1989)
<연인들>(Los Amantes, 100cm×100cm, 1989)

  3층 제일 안쪽에는 <애도의 길>(1940년대~1950년대)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안데스 지역의 원주민들이 사용하는 케추아어로 다시는 서로를 보지 못한다’(Huacayñán)는 의미를 지닌 <애도의 길>은 빈곤과 불의에 직면한 중남미 여러 나라들을 여행한 후, 1946~1952년 사이에 제작한 <Ecuador>라는 움직이는 벽화를 비롯해 103점의 작품을 일컫는다. 하지만 조금 더 외연을 넓히면 과야사민의 초기작들도 여기에 포함된다고 할 수 있다주로 과야사민 자신이 어려서부터 겪은 체험과 중남미의 주요 구성원인 원주민과, 흑인, 메스티소(원주민과 백인의 혼혈)에 초점을 맞춰 - 그들의 전통적인 종교와 정체성을 바탕으로 - 그들이 겪은 빈곤과 불평등의 세계를 고발하며 애도하고 있다.

  과야사민의 딸인 베레니세 과야사민(Berenice Guayasamín)은 이번 특별전시회에서 <애도의 길>과 관련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그것은 가난하고 보호받지 못하는 에콰도르 국민과 학대당하며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원주민과 흑인의 고통을 고발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과야사민은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맨손, 맨발인 그들의 모습을 포착하고, 그 모습을 그림에 담음으로써 사회에 맞서 싸웠던 것입니다.”

<애도의 길> 작품 중에는 중남미 원주민들이 겪어야 했던 고통을 그리스도의 수난에 비유한 <채찍질>(Flagelamiento-Tema Indio, 1948)과, 성모마리아와 아기 예수의 이미지를 차용한 <기원>(Origen, 1951)이 시선을 끈다.

<채찍질>(Flagelamiento-Tema Indio, 96cm×138cm, 1948)
<기원>(Origen, 122cm×81cm, 1951)

  4층에는 에콰도르에 대한 간략한 소개가 있다.

에콰도르 지도

  이번 포스팅의 초점은 사비나미술관에서 열린 오스왈도 과야사민 특별기획전에 대한 간략한 스케치입니다. 오스왈도 과야사민의 미학에 대해서는  강순규(2022), "오스왈도 과야사민의 초기 예술세계 분석", 인문과학125. 93-128쪽을 참조하세요. 감사합니다~.

  아, 사비나미술관에서 <오스왈도 과야사민> 특별기획전 티저 영상을 만들었네요.(https://youtu.be/UH9JtqcvqHg)
  참고하시면 좋을 듯 합니다~.